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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5세기까지 가야 소국이었을 것"학술토론회서 첫 학설 나와 ‘주목’…3세기 신라 편입 반론도
손인준  |  sonij@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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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5  23: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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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이 삼국시대 신라에 편입되기 전에는 가야의 소국으로 ‘삽라’로 추정되는 나라였을 것이라는 학설이 처음으로 제기돼 주목된다.

최근 양산시, 양산문화원, 국회의원(윤영석·서형수)이 공동주최로 양산문화원에서 개최된 ‘양산에서 가야의 숨결을 찾다’는 학술토론회에서 이같은 첫 학설이 제기됐다.

백승옥 국립해양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가야와 고대 양산’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부산 복천동고분군 유물 등을 종합해 보면 부산 동래와 경남 창녕의 신라 복속시기를 5세기 말엽으로 볼 수 있어 고대 양산의 신라 편입은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초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그 이전 양산에 존재한 정치세력을 가야세력으로 보고, 나라 이름을 ‘삽라’로 추정했다.

북정고분군 등의 고고학적 양상으로 봐 양산에 국(國)이 있었으며, 삼국사기 지리지에 ‘삽량주’를 설치했다는 내용을 근거로 신라가 주(州)를 설치할 때 예전부터 쓰던 이름을 사용했고 양(良)은 라(羅)와 통하고 이 어미(語尾)를 가진 것은 대부분 국명이므로 ‘삽라’ 라는 주장이다.

조수현 한반도문화재연구원장은 “고고자료로 본 양산지역의 가야문화’ 주제발표에서 양산은 5세기 이전도 신라문화권으로 단정해 왔으나 최근 활발한 발굴조사에서 5세기 이전 가야토기 흔적이 확인된 만큼 가야문화권 연계성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물금 가촌리 고분군 출토 토기는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가야토기 제작기법의 전통이 유지됐다고 덧붙였다.

또 고고자료로 봐서 양산은 5세기 전까지 김해와 기장, 동래 등 부산지역과 함께 낙동강에 인접한 지형적 영향으로 경주의 사로국보다는 김해 구야국을 중심으로 한 전기 가야연맹의 한 작은 나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주장도 나왔다.

강봉원 경주대 고고미술인류학과 교수는 “미추왕 3년(264) 3월에 왕이 황산(물금)을 둘러봤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미뤄 양산이 3세기에 신라에 편입됐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박맹언 부경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물금광산지역에서 철을 제련하는 용광로 유적이 발견돼 고대 철광석 공급지로 추측된다”고 밝히고 “물금철광산이 ‘철의 왕국’ 가야가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란 분석도 내 놓았다.

특히 이날 발표자들은 양산의 가야사 연구를 위한 중부동과 북정동 고총(高塚)고분의 정비 및 정밀발굴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시는 양산의 가야문화권 규명을 위한 첫 세미나로 향후 심도있는 연구결과 도출을 위한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양산시는 최근 가야사 관련 전문가와의 간담회를 잇따라 여는 등 가야문화 연구·복원사업 추진을 위한 준비를 다각화 하고 있다.

손인준기자 sonij@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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