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단발머리와 택시운전사
알케이씨(영화감상 수집가)
[리뷰] 단발머리와 택시운전사
알케이씨(영화감상 수집가)
  • 경남일보
  • 승인 2017.09.1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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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1000만 관객이 든 영화를 뒤늦게 보았다. 1980년 당시에는 몰랐던 일이라고는 해도 자라는 동안 여기저기서 얻어들은 이야기들을 통해 어느 정도의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윤곽을 잡을 수 있는 나이가 됐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이런 일이 있었느냐?” “정말 몰랐다”는 반응까지 나오는 상황이 더 놀라웠다.

영화는 대체로 덤덤하게 흘러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약간은 두서없게, 산발적인 사실의 나열과 그 나열들 사이의 조금씩 어긋나는 균열이 단편적으로 이어지는 형식이었다. 대중이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묘사는 일전의 ‘군함도’ 사태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덕분에 대부분의 실화 영화는 드라마틱한 과장보다 실제 사실 묘사의 짜집기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택시운전사’는 외신기자인 독일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기록영상을 기반으로 촬영됐다. 익히 알려진 잔혹한 폭행장면은 자연스럽게 걸러졌다. 한 사람의 시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편적 기록을 모아 만든 실화 영화들에 비해 일관성 있는 흐름을 이어가는 것은 다행이다. 영화의 만듦새는 이야기가 담고 있는 무게에 비해 걸작의 구성은 아니다. 비장함을 과장하다가 함정에 빠져버린 ‘군함도’에 비하면 차라리 이편이 낫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은 소시민의 어느 하루가 되었지만 개인의 삶이 모인 것 또한 역사가 되는 것 아니겠나. 집주인인 친구네에 떳떳하게 집세를 내고 싶던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목숨을 건 모험기로 볼 수도 있겠다. 당시 광주 밖의 사람들에 광주는 다른 나라나 다를바 없는 고립된 공간이었다.

긴 세월을 건너 뛰어 역사를 마주한 관객들이 충격을 토로하고 호평을 늘어놓는 가운데 영화 흥행의 인증서 같은 천만관객을 돌파하고서야 뒤늦게 영화관을 들어섰다. 예사로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뭐’ 라는 생각이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그렇게 흘러갔지만 어설펐던 예감은 초반에 받은 충격으로 상영시간 내내 멍했다. 김사복이 첫 등장하며 흥얼거렸던 노래 때문이었다.

영화에 좀 쓰고 싶다고 청하니 선뜻 내놓았다는 조용필의 ‘단발머리’. 그랬구나. 저 노래를 따라 부르던 시절이었구나. 그 같은 시공간 아래 광주는 그랬구나 하는 충격은 영화가 끝나도록 머릿 속에 ‘단발머리’를 재생시켰다. 그렇게 영화 ‘택시운전사’는 ‘단발머리’로 기억에 새겨졌다.

알케이씨(영화감상 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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