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0)
  • 경남일보
  • 승인 2017.09.0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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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0)

목장에서 돌아오니 귀남은 자고 있었다. 양지가 소리 죽이며 바꿔 입은 자리옷의 매무새를 살피고 있는데 누군가 양지의 방 현관문을 무례하도록 탁탁 두드려댔다. 모처럼 깊은 잠이 든 것 같은 귀남의 잠을 깨울 것 같은 왁살스러운 울림이다. 양지가 상을 찌푸리면서 얼른 문 앞으로 다가서는데 대답을 하고 문을 열 사이도 없이 잡아채듯이 밖으로부터 문이 먼저 열렸다. 시장바구니를 든 채 가쁜 숨을 씨근덕거리며 서 있던 주인집 여자가 쏟아지는 물동이처럼 급하게 말을 쏟아놓았다.

“저기, 길가에 젊은 여자가 쓰러져 있는데 사람들이 막 모여 있어. 이 집 언니가 또 술 취해서 누워 있나봐. 어서 나가봐요.”

순간, 양지는 불에 덴 듯 얼굴이 화끈해졌다. 아니라고 양지가 반박할 사이도 없이 뜬눈으로 듣고 있던 귀남이 맹수처럼 주인여자를 겨냥하고 달려 든 것은 거의 눈 깜짝할 사이였다. 허옇게 이를 드러낸 성난 얼굴로 귀남은 주인여자의 멱살을 움켜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씨팔년, 니가 언제 나 술 사줬다고 술 취한 여자, 땡깡만 부리면 다 나한테 뒤집어 씌워어!”

놀란 양지가 엉켜들어 귀남의 손을 뜯어냈지만 사슬처럼 억세게 감아 쥔 귀남의 손은 여자의 숨통을 조이면서 더 단단해졌다. 목이 졸려 성대를 압박당한 주인 여자가 캑캑 대는 가운데서도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를 했지만 귀남은 이미 파랗게 눈을 뒤집고 강파르게 발발 떨었다. 귀남의 온 눈빛에는 철천지원수를 응징하는 순간에서나 나옴직한 희열이 번질거리고 있었다. 먹이를 문 악어처럼 귀남이가 흔들고 뒤채는데 따라 주인여자의 몸은 한 마리 물고기처럼 이리 뒤집혔다가 저리 내동댕이쳐지기도 하는가 하면 야수의 어금니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때문에 오히려 더 심하게 머리를 처박히기도 했다. 이럴 수는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한 대문 안에 산다는 것 때문에 가져 준 관심인데, 저 아닌 것을 확인시키는 방법이 이렇게 무지막지한 폭력이어서는 안 된다. 포달부리는 귀남의 모습은 묶음이 풀린 머리카락마저 곤두서서 마치 독기를 뿜어내는 메두사의 대가리처럼 섬뜩해 보인다.

귀남의 악에 받친 소란이 끝난 것은 보다 못한 동네 사람의 신고로 경찰이 와서였다. 처음에는 술주정인 줄 알았는데 귀남은 술을 먹지 않은 날도 건 수만 삐딱하게 걸리면 상대가 누구이며 장소가 어디라는 것도 가리지 않고 포악을 터뜨렸다.

처음 왔을 때, 방송을 통해서 그녀가 가족을 찾는다는 전화를 받고 양지도 호남이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부모로부터는 사랑도 관심도 못 받고 자란 처지지만 이제부터 우리 자매들만이라도 오순도순 남이 부러워하도록 서로 위하며 살아보자고 방송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내 다짐을 했었다. 언제일지 기약도 없이 흩어졌던 자매들이 다시 모이게 되다니, 이건 신이 된 어머니가 끌어 붙인 핏줄의 끌림이라 여기며 전신을 감돌고 있는 더운 피의 감사함을 마냥 느끼면서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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