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현종 애틋한 부자의 정 이어온 구비구비 애절한 길
◇애틋한 부정이 밴 부자상봉의 길
‘사촌동생인 성종에게 양위하고 27세로 요절한 경종에게는 세 번째 비였던 천추태후와 네 번째 비 헌정왕후가 있었다. 둘 다 사촌 오빠이자 남편인 경종이 죽었을 때 겨우 10대 후반, 천추태후는 정부 김치양과 함께 10여 년 간이나 국정을 농단하였고, 동생인 헌정왕후 또한 왕건의 여덟 번째 아들이자 자신의 삼촌인 왕욱(郁)과 사통하여 왕순(대량원군·훗날 현종)을 낳고 난산으로 죽었다. 누이동생의 간통 사실을 알게 된 성종은 왕욱을 사수현(지금의 사천시)으로 유배를 보냈다. 왕순이 말을 시작하면서 아버지를 찾자, 이를 불쌍하게 여긴 성종은 아이를 아비 왕욱이 있는 사수현으로 보내도록 하되, 함께 살지는 못하게 하여 왕순은 정동면 대산마을에 있는 배방사에 거주하게 된다. 이에 왕욱(郁)은 날마다 유배지인 사남면 귀룡동에서 정동면 배방사까지 찾아가 아들 왕순을 보는 즐거움으로 살았다. 내려온 지 4년 만에 아버지 왕욱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은 개경으로 올라간다. 권력욕에 불타는 천추태후에 의한 거듭된 출가와 숱한 암살의 위험 속에서도 마침내 1009년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제8대 임금 현종이다.’
아버지 왕욱과 아들 현종이 사천으로 내려오게 된 사연은 위 사료를 통해 알 수 있다. 사남면 귀룡동(능화마을)에 살던 아버지 왕욱이 아들 현종이 살던 정동면 대산마을 배방사에 찾아가 부자의 정을 나누었던 길이 곧 ‘부자상봉의 길’이다. 낮 동안에만 만나고 밤이면 떨어져 있어야 하는 죄인의 처지인지라, 왕욱은 자신이 없는 사이 천추태후가 보낸 자객에 의해 아들이 죽임을 당할까봐 늘 염려했다. 그래서 고자(顧子)실 고개를 넘어올 때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배방사에 있는 아들을 향해 몇 번이고 되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처럼 애틋한 부정과 현종이 키워온 꿈을 만나기 위해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반 수강생들과 함께 ‘고려 현종, 부자상봉의 길’ 답사를 떠났다.
◇아들의 꿈을 닦아놓은 고자실 고갯길
사남면 능화마을~안종능지 안내석~안종능지~고자실고개~정동면 고자실마을~학촌교~대산마을~배방사터까지 10㎞ 구간의 부자상봉의 길, 첫출발지인 능화마을 앞 아름드리 느티나무로 조성된 능화숲부터 찾았다. 숲 뒤켠의 이구산 허리를 감싼 안개구름의 신비롭고 오묘한 자태가 애절한 전설 하나쯤 품고 있을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들길을 걸어서 현종의 아버지 왕욱의 유배지인 능화마을에 닿았다.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풍패지향(豊沛之鄕) 사천시’라고 써놓은 벽화다. 왕의 고향이란 뜻의 풍패지향, 역사적으로 풍패지향으로 부르는 곳은 고려시대의 사주(泗洲, 사천)와 조선시대의 전주 두 곳뿐이라고 한다. 마을의 담벼락에는 아버지 왕욱과 아들 현종의 부자상봉에 대한 내용을 그린 벽화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다 상상력을 가미해서 부자상봉의 길을 전설화하여 신비감과 경외감이 배어나도록 만들어놓은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무화과를 따고 있던 아지매에게 고자실고개로 가는 길을 묻자, 감칠맛나는 사투리로 건네는 대답과 함께 무화과 한 줌을 먹어보라며 건넸다. 시골의 인심이 잘 익은 무화과 과즙처럼 달짝지근했다.
◇장엄한 산세 속에서 키운 왕의 꿈
2015년 사천시에서 2억원을 들여 조성한 부자상봉의 길, 곳곳에 친절하게 안내판을 세워놓아서 배방사지를 찾아가기가 수월했다. 대산마을에서 승용차로 1.3㎞ 정도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자 부자상봉의 길 종착지인 배방사터에 닿았다. 배방사는 소실되고, 절터 바로 밑에 새로 지은 현대식 가옥엔 주인 대신 무성한 잡초들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뜰에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가슴이 확 트여왔다. 정말 명당자리였다. 가파른 산기슭인데도 절터 아래엔 농사를 지을만한 터가 있었고, 산골짜기 먼 들판에 구름이 일었다 가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들 현종이 왕이 된 것은 아버지 묘터의 발복도 있었겠지만, 배방사에서 바라본 장엄한 풍경 또한 한 몫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4년을 머물 당시 지었다는 시(詩) 하나를 보면 어린 현종의 포부를 엿볼 수 있다.
‘작디작은 꽃뱀 새끼가 난간에 올랐구나/ 온몸은 비단 같고 반점은 아름답네/ 이 작은 꽃뱀도 숲에서만 살 것이라 말하지 말라/ 때가 오면 하루아침에 용이 되어 하늘에 오를 것을’
부모를 잃은 아픔을 자식은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지만, 그 아픔이 어쩌면 살아남은 사람에겐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면서 꿈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슬픔이 새로운 행복을 가꾸는 거름이 되고 힐링이 되기도 한다.
/박종현(시인·경남과학기술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