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역학자 김승섭 고려대 교수 신간
사회역학자 김승섭 고려대 교수 신간
  • 연합뉴스
  • 승인 2017.09.1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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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발간
신간 ‘아픔이 길이 되려면’ 책 표지.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의료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 모든 사람이 아프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사회역학자인 김승섭(38)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는 “의료기술의 발달만으로는 충분한 해법을 찾을 수 없다”며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돼 진행되는 병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국의 건설노동자를 아프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암 발생을 초래할 수 있는 유전적 요인보다는 고용불안 속에서 안전장치 없이 하루하루 일해야 하는 위험한 작업 환경일 수 있고, 허리가 아파도 병가를 쓸 수 없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는 바로 옆 건물 병원의 의료기술은 무용지물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최근 혐오와 차별, 고용불안, 재난 등 사회적인 상처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한 사례를 묶은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을 펴낸 김 교수를 전화로 만났다.

김 교수가 연구하는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은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학문이다. 2000년에 첫 교과서가 나왔고 김 교수가 공부한 하버드대를 비롯해 세계 주요 대학에서 사회역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준 것도 불과 10여년 전이다.

“사람들은 보통 아픈 원인을 화학물질이나 흡연, 결핵균 같은 물리적·화학적·생물학적 인자에서 찾죠. 그런데 사회역학은 차별과 사회적 고립, 고용불안 같은 사회적 요인들이 인간의 몸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가설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아프게 하는 요인을 개개인이 가진 위험요인보다는 사회나 공동체에서 찾는 거죠.”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의사가 돼서 사람의 몸을 직접 고치는 대신 사회역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김 교수는 책에 소개된 여러 연구 중 특히 쌍용차 해고노동자 건강 연구에 주목해 달라고 했다.

쌍용차에서는 2009년 이후 29명이 뇌출혈, 심장마비, 당뇨합병증으로 숨졌으며 그중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은 자살이었다. 김 교수는 연구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떤 경로로 실업이 자살의 원인이 되는지’를, 나아가 ‘한국은 해고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갔다.

조사에서 해고자들은 일용직과 사내 하청 등 아웃소싱, 자영업과 보험판매, 트럭장사 등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이들 중 취·창업 교육이나 직업 훈련을 받은 사람은 38%에 그쳤다.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못한 이들은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했고 훈련을 받은 만큼 수입이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구직과정에서는 대부분 친구나 지인, 가족과 친인척의 도움을 받았다. 정부 고용센터의 도움을 받은 이는 9.1%에 불과했다. 정리 해고 후 3년이 지나자 65%가 생명보험을, 83%는 적금을 해지했다. ‘사적 안전망’마저 사라진 것이다. 해고로 직장을 잃었을 때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우리 사회에서 해고의 짐은 당사자와 가족이 온전히 떠안게 됨을 보여주는 조사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해고는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존재할 수 있는 일입니다. 모든 사람은 인생에서 한두 번쯤 해고 위기에 놓이기도 하죠.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비극은 그때 국가가 그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연구는 그들의 몸으로 나타난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데이터를 통해 보여주는 중요한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역학 연구는 주로 사회 약자들이 조사 대상이 된다. 그러다 보니 연구가 쉽지 않다.

“정말 다 어려워요. 모든 연구가 약자들에 대한 연구다 보니 데이터를 모으고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어렵습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조사는 노동조합이 원해서 시작했는데도 당사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너무 힘들어했어요. 제가 연구를 잘하면 잘할수록 그들의 고통이 드러나니 불편해하면서 조사에 응했죠. 트랜스젠더 조사 때는 성(性) 소수자들에 대한 낙인이 심하니 자신들의 목소리가 드러나는 걸 꺼려하고 조심스러워하죠. 서베이를 하는 데는 오랜 신뢰가 필요합니다.”

320쪽. 1만 8000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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