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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시론]완장 갑질도 적폐다
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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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0  17: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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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육군 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의혹 여파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공관에 근무하는 공관병에게 손목시계형 호출벨을 채웠다고 한다. 텃밭 농삿일을 시키고, 사령관이 연습한 골프공을 줍게 하는 등 온갖 사적인 궂은 일을 시켰다고 한다.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은 자식이 노예에 버금가는 이 같은 생활을 한다고 상상하면 눈물이 날 지경일 것이다.

옛날 학창시절 매점 앞에서 복사를 해 주던 아줌마가 문득 떠오른다. 시험 때가 되면 강의노트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복사하기 위해 복사기 앞이 북새통이 된다. 이 때만 되면 복사기 아줌마는 갑자기 기세가 등등해졌다. 줄을 바로 서라고 호통을 치고, 도서관에서 빌려 페이지를 접어 표시한 책이라도 보면 “빌린책을 왜 이렇게 구겼냐”고 나무라기 일쑤였다. 또 용지를 가지런히 해서 주지 않았다고 맨 뒷줄로 되돌려 보내기도 했다. 아마도 자신에게 꾸역 꾸역 밀려드는 학생들을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데 매우 흡족해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은 덜 배우고 덜 가졌다는 피해의식도 한몫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아줌마의 모습이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다. 시험철이 끝나면 기억도 못할 아줌마가 아닌가. 그리고 훗날 도서관에 무료복사기가 등장하고 그 아줌마는 어떻게 되었는지 조차 모른다.

차지철은 대통령 경호실장이라는 완장을 차면서 오만방자해졌다. 대통령에게는 아부와 감언이설로 잘 보이려 한 반면 장관들을 부하처럼 다루고 국무총리와 중앙정보부장도 얕보고 무시하며 월권을 자행했다. 이에 모멸감을 느낀 김재규는 궁정동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차지철에게 권총을 발사했다. 차지철은 박 전 대통령을 남겨두고 혼자 화장실로 도망갔다가 45세의 젊은 나이에 최후를 맞았다.

작가 윤홍길이 지은 소설 ‘완장’에 등장하는 종술이도 그렇다. 1980년대 어느 시골 갑부 최씨는 동네 건달 종술에게 양어장을 관리하라고 노란색 완장을 채워줬다. 무단으로 낚시질하던 도시에서 온 남녀들에게 기합을 주고, 한밤에 몰래 물고기를 잡던 친구와 그 아들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한다. 이 맛에 신이 난 종술은 읍내에 갈 때조차 완장을 차고 활보하면서 그 힘과 권력을 실컷 만끽한다. 마침내 완장의 힘에 도취된 나머지 고용주 일행의 낚시까지 막으려다 결국 쫓겨난다.

그 놈의 ‘완장’만 차면 왠지 모르게 위에서 굴림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모양이다. 학창시절 등교시 교문에는 학생주임과 함께 ‘선도부 완장’을 찬 학생들이 서 있어 위압감을 주었다.‘주번 완장’을 차고 으스대는 친구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헌병보조원이랍시고 양민들을 괴롭힌 것도 바로 이 ‘완장’ 찬 조선인들이었다. 6.25때는 붉은 ‘완장’ 찬 인민군 부역자들의 횡포도 대단했다.

국민소득 3만불이면 뭐 하겠는가.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갑질 청산 없이는 동반성장은 요원한 일이다. 5만-10만불의 선진국처럼 사회구조와 국민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다 소용없는 일이다. 우리사회 곳곳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파렴치하고 어리석은 ‘완장 갑질’이 사라지지 않는 한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술집 작부 부월이는 종술에게 “진정한 권력자는 ‘완장’을 차지 않는다”고 충고했다. 술집 작부가 던진 이 외침을 이 시대의 알량한 권력자들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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