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7)
  • 경남일보
  • 승인 2017.09.1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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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7)

“옛날 사람들은 정육점에 대한 직업관을 천하게 생각했지. 그렇지만 수만 개로 늘어난 현대의 직종 숫자를 보면 그 중의 하나일 뿐 아이가. 누군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필요한 고단백을 공급받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겠어. 살신성체가 된 생명들에게 내 나름의 감사표시를 하는 거야.”

“저도 어릴 때 산에서 주운 노루뼈다귀만 우려먹었는데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났다는 말도 들은 기억이 나요. 단백질 섭취는 우리 몸에 무척 필요한 영양분이죠.”



“직업의 귀천에 대한 편견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을 뿌리며 살았을까. 누가 천박한가, 직업을 말하지 말고 그 밥과 반찬을 먹고 어떤 성과를 낼까 그게 우리들의 몫이지. 성내는 마음과 원한을 품은 자. 위선을 행하며 그릇된 소견을 가진 자, 거짓을 꾸미고 아첨을 하는 자, 약자를 겁박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자, 바른 것을 은폐하고 도리에 맞지 않은 것을 가르치는 자. 생명을 해치고 자애로운 마음이 없는 자. 아집과 자만으로 똘똘 뭉쳐 거드름 피는 자. 그들이 가진 좋은 직장이 과연 자부할 수 있고 칭송 받을만한 역할을 할까? 이게 어디 책에만 적힐 내용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오빠 말씀이 맞긴 한데, 세상 사람들 대개는 그런 생각하면서 살지않나요?”

“그러니까 천지자연의 오묘한 섭리로 구중물이 있으면 반드시 정화작용을 하는 맑은 물도 있지.”

“그런데 오빠, 전부터 이런 영혼들 제사를 지내게 된 연유가 참 궁금했어요. 혹시 무슨 계기라도 있었어요?”



“꼭 어떤 연유가 있어서라기보다 나이를 먹다 보니 철이 들었다고 할까? 그러고 보니 학자들이 말하는 먹이사슬이니 약육강식이니 하는 말을 내 눈으로 직접보고 느낀 순간이 없진 않았네. 나를 가르치는 선생은 도처에 있었으니깐. 어느 날 어디선가 꽤악꽤악 비명을 지르는 어린 매미 소리가 들리는 거라. 구원을 요청하는 절규에 이끌려 살금살금 진원지를 찾아갔더니 갓 우화등선하려던 여린 새끼 매미를 사마귀가 꽁무니부터 아작아작 뜯어먹고 있잖겠어. 매미는 애벌레로 수년 간 땅속에 있다가 겨우 여름 한 철 단 며칠이 한 생이라는데, 이 사악한 사마귀 놈이 그 생명을 절단 내는 구나 싶으니 나도 모를 분기가 치솟아 사마귀란 놈 잡을 꼬챙이를 찾아들게 됐지. 갈퀴 같은 앞발로 매미를 꽉 잡고 남의 목숨을 절단 내는 놈의 세모꼴 얼굴은 악귀와 다름없는 거야. 내가 다가가도 꿈쩍 않고 먹이를 먹는데 열중한 놈의 환희롭게 반들거리는 모습이 집중 포착되는 순간, 나는 그만 치켜들었던 손을 떨어뜨리고 말았어. 놈의 얼굴은 굶주린 자가 오랜만에 느끼는 행복으로 충만해 있었던 거야. 며칠간이나 굶주리다 겨우 한 끼 성찬을 하는 사마귀의 환상적인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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