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이동우(작가·한국언론진흥재단)
상처
이동우(작가·한국언론진흥재단)
  • 경남일보
  • 승인 2017.08.1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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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우

칼에 손을 베었다. 부엌칼로 소시지를 손질하다가 엄지손가락을 베고 말았다. 깊지 않은 상처지만 쓰리고 아프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약국은 이미 문을 닫은 뒤였고, 집에는 상처에 바를만한 약도 없었다. 밴드로 상처를 싸매고 잠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날씨는 무더웠다. 밴드는 떼어냈다. 상처는 그럭저럭 아문 듯 보였다. 회사에 있는 동안 몇 번 손을 씻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했다. 칼에 베인 곳의 피부가 완벽하게 접합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싶었다.

이튿날, 오후가 되자 상처 부위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저절로 나아지기를 기대했던 바람이 헛된 바람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아픔은 참기 힘들 정도가 됐다. 손가락 끝에 생긴 상처라 아픔은 극에 달했다. 약국에 가서 연고를 사와야겠다고 생각 했을 땐 저녁 약속 장소로 가기위해 서둘러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다.

아픔을 무릅쓰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저녁시간이라 식당 안은 손님들로 붐빈다. 단체손님들이 들어서자 직원들의 움직임은 더욱 바빠진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다.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손가락에 생긴 상처는 더욱 아파온다. 식당 직원에게 근처에 약국이 있는지 물어 보았다. 길을 건너 있는 약국을 다녀오려면 최소한 15분은 필요하다.

식당에 혹시 약이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직원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직원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화상에 바르는 약은 있어도 베인 상처에 바르는 약은 없다고 한다.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무슨 일인가 묻는다.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는 아픔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가면 약국도 문을 닫았을 테니 하룻밤을 더 참고 버텨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식당 직원이 살며시 다가와 약을 건넨다. 아까 옆에 서 있던 직원이다. 자기 것이라며 이거라도 발라 보겠느냐고 한다. 약을 바르고 나니 아픔이 금방 수그러든다. 고운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리라.

며칠 동안 잠을 설쳤는데 그날은 오랜만에 푹 잠을 잘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상처가 씻은 듯이 나아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종종 상처를 입게 된다. 아문 듯이 보였던 상처가 다시 도지기도 한다. 상대방에 대한 작은 배려와 관심이 이런 상처를 치유해 준다.

 

이동우(작가·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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