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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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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1  23: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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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8)

“그제야 나는 어떤 갈등과 편견을 벗어 던질 수 있었다. 대체 누가 누구를 위해 어떤 짓을 한다는 건지. 그 순간의 깨달음은 남들이 꺼리는 가업을 물려받았으나마 내가 나일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도 됐지. 누군가를 위해서 제 목숨을 보시하는 거룩한 희생에 대한 감사… 꼭 내가 아닌 그 누가라도 하면 좋을 듯한 일 아닌가.”

“마음공부의 바탕이 착실한 자리를 잡은 증거군요.”

오빠는 말하지 않음으로 깊고 큰 울림이 있는 침묵으로 제상위에서 깜빡이는 촛불을 한동안 응시하고 있었다. 감동한 양지의 기억 속에 있던 언젠가 들었던 사례 한 자락이 떠올랐다.

우리 나라에 전쟁이 좀 많았나. 그때 피난민들은 집에서 키우던 소에다 짐을 싣고 가다 식량이 떨어지면 소를 잡아먹기도 했는데. 엊그제까지 한 식구였던 소를 잡으려다 저를 죽일지도 모르는 채 주인을 바라보며 그 유순한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는 소의 목을 안고 대성통곡을 했지만, 그래도 또 우짜겠노 굶주린 가족들을 살려야하니…. 때에 따라서는 지극히 미시적이고 말초적인 현실로 필요악이 성립되기도 하는.

오빠가 아직 제상 앞에 꿇어 엎드려 있는데,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하며 소를 돌보러 갔던 젊은 목부가 황망하게 달려왔다. 이런 분위기에는 절대 있어서 안 될 소란이었다. 오빠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목부는 곁에 있는 양지에게 화급한 사태를 알렸다.

“수연이 작은 이모님이 문을 열어 소를 몽땅 축사 밖으로 내쫓고 있심더. 아무리 말려도 안됩니다. 퍼뜩 좀 가보이소.”

또 귀남의 짓이라니. 바람개비처럼 양지가 먼저 달려간 것은 물론이다.

“언니야!”

양지가 소리쳐도 귀남은 못들은 척 계속 소들의 엉덩이를 작대기로 때려서 내몰고 있었다.

“언니야, 또 이런 말썽을 피우나. 제발 좀!”

양지가 뺏는 작대기를 확 밀어 던진 귀남이 비웃음 어린 입귀를 씰룩거리며 양지를 노려보았다.

“니도 미친년이다. 꼴에, 하는 짓이라고는. 잡아먹을라꼬 가둬놓고 제사는 뭔 제사. 그런 가증스런 짓 그만 하라캐라. 이 짐승들한테 부끄럽지도 않나?”

양지는 우뚝 말문이 막혔다. 누가 이 말을 틀렸다할 것인가. 양지가 돌아보는 눈길에 오빠는 아직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양지는 귀남이 온 후로 구름 낀 나날 내내 독거미가 쳐놓은 그물을 걷어치우고 다니듯 해야 한다.

지난 해의 그 일만 해도 그랬다.

“내가 하는 것 보면 가장 토속적이고 원초적인 걸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당장 뭔가 깨닫게 될 끼라. 남들은 잘 모르는, 나만의 고집이라 말할테지만 요즘처럼 잘 난 사람 많은 세상에 나 같은 똥고집 촌놈도 하나쯤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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