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가을 속 깊숙이 들어가고 싶다
최숙향(시인, 화개초왕성분교장)
[교단에서] 가을 속 깊숙이 들어가고 싶다
최숙향(시인, 화개초왕성분교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10.1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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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예술제가 끝나고 유등축제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필자는 집이 촉석루 아래여서 산책 삼아 거의 매일 축제장을 거닐었다. 여러 곳에 펼쳐진 야외무대에 들러 음악에 취하기도 하고 길거리 공연장에 머무르기도 했다. 길거리공연을 즐기는 사람들의 문화의식도 많이 바뀌어 문화를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서민들의 모습이 또 다른 문화풍경을 자아냈다. 필자 역시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 오랜만에 군중 속의 고독을 즐기며 침잠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문득 귀에 익은 노사연의 노랫말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랍니다...'

‘인생이란 눈 맞은 돌멩이처럼 오래 견뎠다는 말, 견디며 숟가락으로 시간을 되질했다는 말, 되질한 시간이 가랑잎으로 쌓였다는 말...’과 ‘해질 무렵 굽은 산길이 더욱 또렷하다’는 이기철시인의 시 구절이 떠올랐다.

현대사회에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 그 속에서 무엇보다도 사람으로 부터 받는 상처가 많다고 한다. 먹고살만하니 정신적인 상처와 고통을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갈수록 사람들이 피폐해지는 것 같다. 자긍심이 높은 집단일수록 시기와 암투, 거기에다 질투로 빚어지는 갈등이 더 많은 현실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어릴 적부터 영재교육은 인성교육과 연계해서 해야 된다고 뒤늦게 부르짖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인성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성품, 각 개인이 가지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특성이다.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온갖 욕심을 내며 사람을 이용하고 살아가는 얄팍한 사람들이 아닌 참다운 인성을 가진 사람이 빛을 발하는 세상이 되어야겠다.

필자는 평소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치유와 공감의 채널을 자연 속에서 찾아야 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을 통해서 치유해야 한다는 말을 되새기며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들고 군중 속을 헤매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복효근 시인은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고 했다. 해질 무렵 굽은 산길이 더욱 뚜렷이 보이듯 세월 따라 익어가면서 부족한 삶의 그림자를 고쳐가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짙어지는 계절이다. ‘용서는 단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들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상처받은 가여운 내 영혼을 위해 숨 쉴 수 있도록 스스로를 놓아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이다.’는 딜라이 라마 ‘용서’가 때에 따라서 상처받기 쉬운 세상에서 치유와 힐링의 삶을 위한 해답이 아닐까 생각된다.

필자는 이 가을 내내 가을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마을을 기어코 찾아내고 싶은 심정으로 걷고 또 걸어볼 참이다.
 
최숙향(시인, 화개초왕성분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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