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지만 신앙에 관한 이야기는 항상 신중한 편이다. 다만 혼자 알고 있기엔 너무 아까운 이야기를 설교로 들을 때나 적절하게 꺼내곤 했었다.
평소 유쾌하게 설교를 풀어내시는 한 목사님께 들은 이야기가 있다. 아래의 이야기는 꼭 종교의 관점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으니 한번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화제는 ‘용기의 언어’, 당신을 힘나게 하는 용기의 언어는 무엇인가. 이 이야기를 꺼낸 목사님 자신은 ‘칭찬’을 들으면 힘이 난다고 했고 당신의 아내께선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힘을 내는 것 같다며 ‘도움’이 아내를 용기내게 하는 언어일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를 힘낼 수 있게 하는 용기의 언어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 내 경우엔 ‘유머’가 용기의 언어 아닐까 싶었다. 어릴 때 영국의 윈스턴 처칠, 현대 정주영 회장, 김영삼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의 위인들께서 유머로 위기를 타개하고 분위기를 주도했던 일화들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던 나는, 스스로도 그런 멋진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말을 할 때에도 여유를 가지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아무리 힘든 일을 겪게 되더라도 꼭 이겨내서 나중에 유쾌하게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때, 곤란하거나 어려운 자리에서 유머로 응수해 유쾌하게 분위기를 환기시킬 때 나는 내 자신이 마치 강한 사람이 된 것 같은 힘을 느낀다.
사실 힘든 일에 대한 몇 가지 신념이 있다. 이를 테면 내게 일어난 대개의 힘든 일이라는 게 그저 내 인생에 일어난 다양한 일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믿음, 인류에서 누군가는 나 같은 일을 겪었으며 그들도 이 같은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믿음, 나를 사랑하는 신께서 내가 견디지 못할 고난을 주지는 않았으리라는 믿음 같은 것들 말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믿음들을 발판 삼아 괴로운 순간들을 버티고 견뎌왔다. 그리고 정말 그 모든 일들이 지나 딛고 올라 선 자리에서 타인에게 줄 메시지로 바꿔낼 수 있을 때 보람이 다가왔다.
바야흐로 용기가 부족한 시대 같다. 도전할 용기, 타인을 감싸줄 용기, 소신을 지킬 수 있는 용기 같은 것들이 보기 어려워졌다. 어쩌면 용기가 생존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용기의 필요성을 거들떠보지 않는 덕분에 그들의 자존감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않았는가. 인생에서 용기의 필요가치를 아는 분들께 묻는다. ‘나’를 가장 힘나게 하는 용기의 언어, 과연 무엇인가.
황진혁(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