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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56>농부시인의 행복론가난의 삶 택한 서정홍시인의 터전 찾아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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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4  22: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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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볕에 말리고 있는 열매들.



◇세상의 모든 보물을 얻은 농부시인 서정홍

‘모든 것을 버릴 때 진실로 그대는 세상 모든 보물을 얻을 수 있다.’ 슈마허의 ‘자발적 가난’에 나오는 간디의 말이다. 도시에서의 편리하고 안정된 삶을 버리고 황매산 기슭 나무실 마을에서 ‘생태농업’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농부 서정홍 시인의 자발적 가난의 삶을 만나기 위해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 강좌 수강생들과 함께 떠났다. ‘농부시인의 행복론’이란 책을 읽고 이 시대 대안농업의 대명사로 떠오른 서 시인의 삶과 나무실에서 키우는 농부로서의 꿈의 무늬가 어떤 색으로 얼룩져 있는지 몹시 궁금했다.

   
 마을 동산에서 도토리를 줍고 있는 농부시인.

서정홍 시인이 살고 있는 황매산 기슭 나무실 마을로 가는 길옆에는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벼들이 따사로운 가을 햇살에 몸을 맡긴 채 여물어가고 있었다.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하지만 저 들녘이 하나의 풍경으로 있을 때는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들녘이 삶의 터전일 때는 풍경이 아닌 땀과 노동의 현장으로 바뀐다. 가을로 익어가는 저 들녘을 삶의 현장이면서 꿈과 낭만이 깃든 풍경으로 일구고 있는 농부시인, 힘든 삶의 현장을 오로빌로 만드는 일은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에 달려 있음을 그를 보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마을 어귀의 작은 동산에서 도토리를 줍다가 우리를 맞아 주시는 따뜻한 모습과 집 안마당에 널어놓은 녹두, 호박말랭이, 무말랭이, 여주, 고추, 대추 등이 가을 햇살에 동화되어 과실에서 먹거리로 진화해가는 풍경이 참으로 정겹고 평화로웠다. 점심상에 내놓은 반찬들도 모두 유기농으로 지은 호박잎, 고추, 감자, 애호박 그리고 산중에서 따온 다래순과 같은 산나물로써 자연친화적이면서 몸에 약이 되는 것들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짓기 힘들어하는 외진 곳의 논밭을 빌려 소규모 유기농법으로 지은 농사이다 보니, 수확하는 모든 열매들이 건강과 행복을 지켜주는 보물이 아닐 수 없다. 한 마리의 닭 울음소리가 온 마을에 닿는 이런 작은 산골마을에서 서로 화해하고 많은 것을 공유하는 공동체 삶을 누리기 위해 찾았다고 하는 나무실, 9가구 27명이 일구어가는 오로빌처럼 느껴졌다.

 
   
아담한 농부시인의 집 안채.

◇성직자의 자세로 농사를 짓는 농부시인

서 시인이 쓴 시 ‘내가 가장 착해질 때’를 보면 이곳 황매산 기슭에서 어떤 삶을 누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랑을 만들고 / 흙을 만지며 / 씨를 뿌릴 때 /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봄이면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가을이면 뿌린 만큼 열매를 거두는 농부들이 진정한 성직자라고 생각하는 그는 온몸으로 세상을 살리는 일을 실천하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 농부의 길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우리의 농업은 수확과 고소득이라는 결과 중심을 지향해 왔다. 그러다 보니 농약과 화학비료를 남용하게 되고, 그 결과 경제적인 부는 누릴 수 있는지는 몰라도 땅과 사람 모두가 병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과정 중심의 농업으로 바꾸어 땅도 살리고 사람도 건강하게 하는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그의 맑은 눈 속에, 농업이라는 성직(聖職)을 온몸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신념과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의 이러한 삶이 문학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삶과 문학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문학과 삶이 하나요, 삶 속에서 피어난 것이 진정한 문학임을 독자들에게 몸소 보여주고 있다.

‘죽을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여/ 병원에 간 할머니한테/ 담당 의사가 말했습니다.

“몸 안에 큰 병이 열두 가지나 됩니다./ 앞으로 일하시면 안 되고/ 당장 입원하셔서 치료를 해야 하겠습니다.”

“아니고, 선상님!/ 제 병이 열두 가지밖에 안 됩니꺼? 그라믄 일을 해도 끄떡없심니더. 큰 병이 서른 가지나 된다는/ 수동 할매도 일하는데….”

할머니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이른 아침부터 콩밭을 맸습니다.’

이 시는 ‘수동할매도 일하는데’이다. 농부로서의 삶의 자세를 이웃에 사시는 수동할매에 투영시켜 표현해 놓은 이 시에서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는 그의 진실된 삶을 엿볼 수 있다.



◇우리 농촌의 오래된 미래, 나무실 마을

우리밀 살리기와 열매지기공동체 운동, 매주 화요일 시골아이들과 하루 종일 농촌체험을 하는 강아지똥학교와 농촌을 사람사는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운영하는 담쟁이 인문학교 등을 몸소 이끌어간다. 결과와 수익이 높은 농촌보다 농촌에서의 삶에서 보람과 긍지를 느끼게 하는 참세상을 만들고, 행복한 농촌을 만들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필자는 성직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자발적 가난을 추구하는 그의 삶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가를 확인한 하루였다. 또한 생태화장실을 통해 자연과 생태를 지키고 더불어 사람도 지키겠다는 신념과 철학이 몸에 배어 있음을 보고, 시인의 꿈과 농촌의 미래가 황매산 나무실 마을에서 가을 들녘처럼 영글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을 여물게 하는 농부시인의 모습이 어쩌면 이 가을과 무척 닮아 있었다. 안으로는 남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면서, 밖으로는 우리 농촌이 진정으로 잘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모색하는 대안농업을 온몸으로 실행하면서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세상을 꿈꾸는 그는, 말 그대로 참된 농부였다.
   
영암사지에 있는 600년 된 느티나무.


우리 일행을 배웅해 주면서 잠깐 동안에도 마을 어귀에 있는 동산에서 도토리를 주웠다.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다 줍는 것이 아니라 대충대충 줍고 있었다. 그래야 나중에 오는 이웃들이 또 주워갈 수 있기 때문이란다. 부자가 되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 농부가 된 시인의 뒷모습이 거룩하게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영암사지의 쌍사자석등과 3층석탑을 둘러보았다. 영암사터, 6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또 하나의 가을을 물들이고 있었다. 황매산 기슭의 나무실 마을이 우리 농촌의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산재 밑 영암사지의 쌍사자 석등.



/박종현(시인, 경남과학기술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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