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507)
눈치를 살폈지만 오빠는 가타부타 입을 열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용에 관심이 없는 눈치도 아니다.
눈을 떠서 양지를 바라보는 오빠의 얼굴에 싱긋 웃음이 떠올랐다.
“재미있죠? 더 들어보이소. 며느리의 그 답장에 시어머니가 다시 보낸 답장인데 반전이 더 재미있심더. 기가 막혀요. 사랑하는 며늘아. 엄마라고 불러줘서 고마운데 이걸 어쩌면 좋으냐? 내가 눈이 나빠서 만원을 쓴다는 게 억원으로 적었네. 선산 판거 60만원, 보상 받은 거 30만원 해서 제사 모시려고 장봐다 놨다. 얼른 와서 제수 만들어 다오 사랑하는 내 딸아. 이 며느리 기분이 어땠을까요? 여기 종결편이 또 있어요. 며느리 보아라. 니가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우리는 너희를 기쁨조로 생각한 적이 없다. 가끔 너희가 마지못해 인상 찌푸리고 집에 왔다가면 그 후유증으로 며칠 씩 몸살을 앓고 기분이 상하고 짜증이 난다. 이제는 올까봐 금요일부터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면 답답한 네 머리를 아이가 닮을까 두렵구나. 며늘아. 인생은 60부터란 말 모르느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니 생색내지 말고 줄거운 마음으로 살아라. 우리는 외로울 틈이 없다. 여기 벽촌에도 이제 해외여행 계를 해서 안 가본 데가 없는 정도다. 시에미 전화 기다리지 말거라.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도 잊지 말거라. 너희도 가정이 있으니 이제는 우리한테 행여나 기댈 생각은 말아라. 애 맡길 생각은 더더욱 말고 니들 자식이니 니들이 키우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 살던 집과 재산은 우리가 쓰고 남으면 누구든 우리부부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에게 넘겨줄 것이고 아니면 사회 환원하기로 했다. 죽을 때 혼자인 것 모르는 사람도 있다더냐. 너나 잘 새겨서 명심하고 늙어서 니 자식한테 부담주고 주책부리지 말거라. 시에미 시애비 꼰대라고 무시하지마라. 선산도 논밭도 우리가 젊을 때 열심히 저축하고 농사지어서 늘인 재산이니 오늘날 이렇게 노후를 즐길 수 있구나. 분명히 말하건대 앞으로 명절이니 제사니 핑계로 우리 집에 와서 행여 유산이나 챙기려 들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으려는 속셈은 버리는 것이 좋을 게다. 며늘아. 너 역시 지금 이 순간도 늙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세월은 잠시다. 그리고 이번 설 전에는 유럽으로 10박 11일 여행 가기로 했으니 네 통장에 송금한 5만원 찾아서 설이나 쇠거라. 아참, 깜빡하면 그냥 넘길 뻔한 게 있는데 이번 참에 말해야 되겠다. 너희들 신혼집 장만할 때 보태준 일억은 그냥 준 것이 아니고 차용해 준 것이니 얼른 갚아라. 너거 시아버지와 내가 피땀 흘려가면서 모은 돈이니 용돈으로 써야겠다. 다 읽었는데 감상이 어때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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