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50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507)
  • 경남일보
  • 승인 2017.10.1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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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507)

눈치를 살폈지만 오빠는 가타부타 입을 열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용에 관심이 없는 눈치도 아니다.

“이 다음은 또 며느리의 답장입니다. 헉, 어머니 친정부모님한테 보낸 메모가 잘못 갔네요. 친정에는 몰디브 간다 하고서 연휴 내내 시댁에 있으려고 했거든요. 헤헤헤. 어머님. 좋아하시는 육포 잔뜩 사가지고 내려갈게요. 항상 딸처럼 아껴주셔서 감사해요. 오늘은 어머님께 엄마라고 부르고 싶네요. 엄마 사랑해요.”

눈을 떠서 양지를 바라보는 오빠의 얼굴에 싱긋 웃음이 떠올랐다.

“재미있죠? 더 들어보이소. 며느리의 그 답장에 시어머니가 다시 보낸 답장인데 반전이 더 재미있심더. 기가 막혀요. 사랑하는 며늘아. 엄마라고 불러줘서 고마운데 이걸 어쩌면 좋으냐? 내가 눈이 나빠서 만원을 쓴다는 게 억원으로 적었네. 선산 판거 60만원, 보상 받은 거 30만원 해서 제사 모시려고 장봐다 놨다. 얼른 와서 제수 만들어 다오 사랑하는 내 딸아. 이 며느리 기분이 어땠을까요? 여기 종결편이 또 있어요. 며느리 보아라. 니가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우리는 너희를 기쁨조로 생각한 적이 없다. 가끔 너희가 마지못해 인상 찌푸리고 집에 왔다가면 그 후유증으로 며칠 씩 몸살을 앓고 기분이 상하고 짜증이 난다. 이제는 올까봐 금요일부터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면 답답한 네 머리를 아이가 닮을까 두렵구나. 며늘아. 인생은 60부터란 말 모르느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니 생색내지 말고 줄거운 마음으로 살아라. 우리는 외로울 틈이 없다. 여기 벽촌에도 이제 해외여행 계를 해서 안 가본 데가 없는 정도다. 시에미 전화 기다리지 말거라.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도 잊지 말거라. 너희도 가정이 있으니 이제는 우리한테 행여나 기댈 생각은 말아라. 애 맡길 생각은 더더욱 말고 니들 자식이니 니들이 키우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 살던 집과 재산은 우리가 쓰고 남으면 누구든 우리부부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에게 넘겨줄 것이고 아니면 사회 환원하기로 했다. 죽을 때 혼자인 것 모르는 사람도 있다더냐. 너나 잘 새겨서 명심하고 늙어서 니 자식한테 부담주고 주책부리지 말거라. 시에미 시애비 꼰대라고 무시하지마라. 선산도 논밭도 우리가 젊을 때 열심히 저축하고 농사지어서 늘인 재산이니 오늘날 이렇게 노후를 즐길 수 있구나. 분명히 말하건대 앞으로 명절이니 제사니 핑계로 우리 집에 와서 행여 유산이나 챙기려 들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으려는 속셈은 버리는 것이 좋을 게다. 며늘아. 너 역시 지금 이 순간도 늙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세월은 잠시다. 그리고 이번 설 전에는 유럽으로 10박 11일 여행 가기로 했으니 네 통장에 송금한 5만원 찾아서 설이나 쇠거라. 아참, 깜빡하면 그냥 넘길 뻔한 게 있는데 이번 참에 말해야 되겠다. 너희들 신혼집 장만할 때 보태준 일억은 그냥 준 것이 아니고 차용해 준 것이니 얼른 갚아라. 너거 시아버지와 내가 피땀 흘려가면서 모은 돈이니 용돈으로 써야겠다. 다 읽었는데 감상이 어때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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