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단상] 가을꽃 구절초처럼
[월요단상] 가을꽃 구절초처럼
  • 경남일보
  • 승인 2017.10.19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가슴으로 가을을 느낄 수 있다면 누구나 시인이며 예술가가 된다. 가을날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찬바람과의 만남, 서로가 마주치는 눈빛들, 인간사 모든 일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을지라도 그 시작은 결국 만남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지난 봄날 새색시를 보듯 연초록으로 물든 초목의 만남은 얼마나 수줍고 아름다웠던가. 무럭무럭 피어나 여름을 뒤덮을 때의 성숙함, 참으로 싱그러운 신록의 계절이었음을.

가을에는 누구나 조금씩 성숙되어 가겠지만 세상과 인생에서 지금껏 소홀히 여겨온 바로 그것들을 깨우치게 될 듯. 미소인 듯 곱게 웃는 웃음이 천금보다 귀중하고, 한마디의 부주의가 때로는 성현들의 귀중한 말보다 더 가치 있다는 걸 비로소 알아질 듯. 그래서 이 가을날 사랑보다는 정다운 말 한마디를 듣고 싶은 건 아닐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나눔이라는 것을 어리석게도 이제야 깨닫는 듯. 저 먼 꿈으로 가는 길은 아무것도 아닌 듯한 하루하루의 생활이 때로는 얼마나 어처구니없었는가.

가을날 저쪽 멀리 들길에서 피어있는 가을꽃 한 아름을 건너 받는 행복과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는 무욕의 욕심을 이제 깨닫도록 하자. 사랑이 아무리 뛰어나고 훌륭하다 해도, 실천은 작은 것일 때 더욱 값지다는 당착(撞着)을 어쩌랴. 자연 앞에서면 사람은 작아지지만, 그러나 자연 속에 설 때만이 큰 가슴을 가지지 않겠는가. 가을꽃이 떠올려주는 지난 세월에 스쳐진 인연들. 그 희미한 기억들이 외로운 들길에 웃음 잃고 피어나는 구절초가 돼 가을 하늘 휘저어 바람의 향기로 다가오는 건 아닐까.

아름다움이란 찬란하고 색깔 좋은 꽃이 아니라, 많은 사연을 담고 변함없이 눈물 속에 피어난 하늘 위의 꽃, 구절초라는 생각에 눈떠질 때쯤 가을 하늘은 더욱 높고 멀어져만 간다. 한가로운 가을 들녘 들국화 속으로 찾아들 때, 가지는 것 보다는 알아내고 찾아내는 기쁨, 얻기보다는 버리는 슬기를 얻자. 서리 찬 들녘자락을 별빛 내려 쓸고 갈 때 하늘 위의 꽃으로 피어나는 향기로운 꽃 구절초를. 그 진한 내음 가을바람과 함께 한 줄의 시로 승화시켜 우리의 늙음도 구절초처럼 깨끗해지도록 하자.

감상이라는 물기를 잃어버려서 흙먼지 날리는 가슴으로 자신과 주위에 냉혹하고 엄하게 아무 감각 없이 살아오지 않았는가, 이제 마음속의 즐거운 세속도 다시 한 번 이 가을날에 되살려 음미할 수 있기를 바라자. 좀 더 살아있는 사람답게 따뜻한 마음으로 사소한 일에도 즐거워하고, 적은 슬픔에도 가슴 아파하며, 남의 아픔도 함께하면서 가족이 되고 이웃이 되어 가을꽃 구절초처럼 순수하고 아름답게 살도록 하자.

 
<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