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꿈꾸다 들어선 한복의 길 천직 됐다”
“배우 꿈꾸다 들어선 한복의 길 천직 됐다”
  • 김귀현
  • 승인 2017.10.3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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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디자이너 그레타리, 데뷔 50주년 패션쇼
그레타리(73·본명 이용주)는 우리나라 한복계를 대표하는 원로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주몽’을 비롯한 각종 사극 드라마와 공연 속 전통 의상들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국내외에서 지금까지 연 한복 패션쇼만 50회를 훌쩍 넘는다.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은 그가 29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자신의 한복 인생을 담은 패션쇼를 선보인다.

 최근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방황하던 20대 때 우연히 한복의 길로 들어선 게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주위에서 아직도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이게 내 천직인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50년 한복 외길을 걸어오며 지금은 한복계 대부로 불리지만, 청년 시절 그는 배우를 꿈꾸는 연극영화학도였다.

 “졸업 후 연기자가 되려고 연예계를 기웃거렸지만,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가세도 기울어 힘든 시절을 겪었어요. 당시 알고 지내던 무용과 교수가 공연 의상을 만들어 보라고 권유해서 한복을 시작하게 됐죠. 처음엔 몇 년만 하다 그만두고 다시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어느덧 50년이 흘렀네요.”

 서라벌예고와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 출신인 그가 처음 한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스물 세 살이던 1967년. 한복 디자이너라는 개념조차 없었고, ‘남자가 무슨 옷을 만느냐’며 부끄럽게 여기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옷 만드는 것을 배울 곳도 마땅치 않았다.

 “패션계 원로인 노라노 선생님의 양재학원에 다니다 한복은 일반 옷과 재봉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한복 만드는 선생님들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배웠어요. 당시엔 의상학과도 주로 여학교에만 있었거든요. 공연 속 궁중 의상은 고증이 중요한데 참고할만한 책도 거의 없었죠. 당시 절에 생존해 있던 조선말 상궁들을 찾아다니며 물어보기도 하고, 세종대 박물관에 전시된 궁중 복식을 스케치하면서 배우기도 했습니다.”

 당시 보기 드문 남자 한복 디자이너였던 그는 이리자, 이영희 등 한복 디자이너 6명과 의기투합해 한국의상협회를 창립하고 패션쇼를 통해 한복을 선보였다.

 1980년에는 서울에서 열린 미스유니버스대회에 참여해 각국의 미녀들이 그가 만든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이를 계기로 그는 널리 명성을 얻게 됐고, 이후 드라마 의상 제작과 국내외 각종 행사의 패션쇼 의뢰가 쏟아져 들어왔다. 특히 드라마 ‘주몽’ 속 의상을 맡아 근 1년간 밤을 새워 일하며 800여 벌의 옷을 만들었던 것은 가장 힘든 경험이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고 한다.

 그는 공연·드라마 속 의상이나 한복 패션쇼를 위한 옷뿐 아니라 일반 고객을 위한 한복도 만들고 있다. 하지만 고증을 통해 궁중 의상을 제작하는 것에 더 애착이 간다며 “그 누구도 깊이 파고들지 않았던 것을 해왔다는 것에 보람과 의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29일 열린 패션쇼는 옛춤 의상과 한복의 근현대화 과정을 재조명하는 자리였다. 무용 복식을 중심으로 한 ‘옛춤의상’, 1900년대 시대별 복식을 재조명하는 ‘한복의 근현대화’, 그가 독창적으로 만든 퓨전 의상을 선보이는 ‘예술의상’ 등 3부로 나눠 총 100여 벌을 선보였다. 자신의 뒤를 이어 한복 연구가의 길을 걷고 있는 두 아들과 함께 꾸미는 무대기도 하다.

 경희대, 한성대 등지에서 꾸준히 강의도 해 온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만들어 온 작품을 총망라해 보여주는 책도 준비 중이다.

 “대학에서도 한국 복식 수업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어 안타까워요. 전공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죠. 책을 만드는 것도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버팀목이 되어 주는 두 아들 덕분”이라며 “여전히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많으니 움직일 수 있는 한 계속 한복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한복 디자이너 그레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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