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위안
황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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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숙자(시인)
  • 경남일보
  • 승인 2017.11.23 15: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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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다, 포구는 작고 아늑했다. 초겨울 바람이 깊어가고

바다가 품고 있다가 바람이 키워 낸 갯벌에 꼬막이 여무는 계절.

방파제 끝에 웅크리고 앉았는데 바다로 나가는 배들은 보이지 않는다.

며칠 몸살로 자리보전을 하고 나면 괜찮아질려나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털고 일어나지질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바다를 보러 나섰다.

해가 지기 시작하고 시장기가 몰려온다. 간판이 희미한 노을빛으로 빛나는 집의 문을 밀고 들어선다.

흐물흐물 씹을것도 없이 후루룩 목구멍을 넘어가는 얼었던 속이 확 풀리는

물메기는 비리지않고 시원한 맛을 내었다.

서운하고 아팠던 상처들이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소박하지만 그리운 맛이다.

그냥 시장모퉁이 식당 아무데서나 해장국으로 끓여주는 물메기탕은 언젠가 서해안지방에서 먹었던 곰치국과 비슷했다.

해안가에 사는 메기 비슷하게 생긴 놈인데 살과 뼈과 흐물거리고 무와 콩나물을 함께넣어 우려낸 국물맛이 비리거나 기름지지 않고 맑았다.

도대체 우리에게 먹는 것이란 무엇인가 하는 쩌릿한 감동 같은 것이 스며들고

인생이 허기질 때 사람의 온기가 그리울 때

삶의 애환을 담은 맛을 찾아서 그 깊고 진한 겨울바다를 만난 것이다.

바다는 허기진 영혼을 채워주는 어머니의 밥상처럼 느껴진다.

수많은 생명들을 품어 키워주는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늘 풍성하게 내어주는 넉넉한 어머니의 품속 같은 바다.

그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고된 삶속에서도 생명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제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아버지의 너른 등짝같은 바다.

항구의 길끝에는 ‘돌아가시오’ 팻말을 들고 서있는 바위가 있었다. 그래, 돌아가야지.

비로소 눈물이 핑 돌았다.

“바람으로 길을 내고 젖은 바위로 돌아왔을 것이다/죄 아닌 것 없어/눅눅한 것들에 기대어 자주 등골이 울고/눈물은 늘 그 자리에 남아/겹겹 생의 곁을 만져주고 쓸어주는 일/지극하다는 것은 오래 젖었다가 그렇게 곡진하게 출렁이는 것이다.”

나즉나즉 혼잣말을 해가면서 남아있는 설움들을 털어낸다.

어제는 돌이킬수가 없고 내일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아직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것들이 있어 힘을 얻는다.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들이 훨씬 많은 인간의 시간 속에서 오래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아직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시인 김광균은 오월화에서 세월이 오면 꽃피고 세월이 가면 꽃지는데 사람만 가면 안온다고 했다

바다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가는 것 같다. 포구에서 마주한 그 오롯한 시간.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세상의 길은 다시 설레인다.

 
황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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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2017-12-30 20:42:00
저도 물메기탕이 좋아요. 참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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