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인간관계와 화법교육(2)
[교단에서] 인간관계와 화법교육(2)
  • 경남일보
  • 승인 2017.11.28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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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준(진주동명고등학교 교장)
동네 식육점에서 한 사람은 “어이~ 박씨 고기 1근만 줘”라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박사장 고기 1근 주시게”라고 했을 때, 주인 박씨가 자른 고기와 박사장이 자른 고기는 분명 양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또한 식당에서 서빙하는 중년 부인에게 “아지매 깍두기 좀 더 주소” 할 때와 “(아줌마일지라도)아가씨, 깍두기 좀 더 주실 수 있나요” 했을 때 분명 접시에 담긴 깍두기의 양이 다를 것이다. 이렇듯 말은 화자의 인격 표현인 동시에 상대의 감정과 태도에도 큰 영향을 준다.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온다’는 말도 있다. 이 속담 또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한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기분이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조상들도 익히 알고 있던 삶의 지혜였다.

그러나 요즘 우리의 사회적 대화엔 다분히 속물주의(snobbism)가 만연하다. ‘snob’이 ‘남을 깔보는 사람’을 의미하기에 이 속물주의는 ‘출신과 학식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며, 고상한 체하면서 남을 깔보는 성질’을 말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정작 남의 갑질엔 입에 거품을 문다. 하지만 자기 자신 또한 갑질의 주체가 되는 경우도 허다한데, 식당 종업원, 편의점 알바생, 주차장의 주차요원, 가게 판매원을 내 누이와 조카들이라 생각한다면 그렇게 막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돈을 내는 손님이고 너는 내 시중을 드는 사람이니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천박한 자본주의의 산물인 속물주의다.

사람의 대화에서는 진정성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때론 하얀 거짓말도 필요한데, 그것은 좋은 의도로 상대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염려가 되어 “얼굴이 많이 삭았구나, 어디 아프냐?”라고 물었을 때, 그 발화 의도인 <염려>는 사라지고 불쾌감만 남을 수밖에 없기에, 오늘 저녁에 만날 친구들에게 “어이~ 친구, 얼굴 많이 좋아 보이네! 요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나에게 그 비결 좀 알려주지”라고 말해보자. 단언컨대 오늘 저녁 회식 자리의 식대는 서로 내려할 것이고, 그 자리는 종내 흥성스럽고 화기애애할 것이다.

 
문형준(진주동명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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