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안부가 궁금하여
안부가 궁금하여
풀꽃도 전화 걸어볼 데가 있다
그리움의 힘으로 꽃을 피우는…
-나석중(시인)
끝내 마지막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돌아 섰던 날들의 기억이 스멀거리는 디카시다. 안부가 궁금하여서 안부를 묻자와, 길게 늘어선 대열에 끼여 호주머니 속 동전을 이리저리 굴리던 순간들 말이다. 떨리는 가슴을 어쩌지 못해 가까스로 다가간 순서를 양보하고 다시 맨 뒷줄에 매달리곤 하였는데, 가느다랗게 건넬 첫마디를 찾아 몇 번이고 목소리를 가다듬던 그런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리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깊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지만 자꾸만 희미해져 가는 이름 뒤에 감추어진 얼굴, 얼굴들. 하지만 때때로 그 아련한 힘으로나마 작은 꽃잎을 피워보는 것이 삶이 아니겠나. 공중전화 부스 안으로 슬며시 자리한 풀꽃을 통해 시인의 상상력은 이토록 힘이 세다. 잊었던 추억을 슬며시 꺼내 읽게 하는 힘 말이다. 오늘 나는 머나먼 그대에게 그리운 안부를 묻나니…./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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