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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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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11  23: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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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40)

여건이 안 되니 묻어두어서 그렇지 여건만 주어진다면 당신이 원하는 자손을 갖기 위해 다시 허리춤 내릴 꿈을 머릿속에 숨기고 있을 남자. 양지는 실소를 머금은 채 어디선가 읽은 구절을 떠올렸다. 개미나 하루살이처럼 생명력이 약한 종일수록 종족 보전을 위한 개체의 수가 절대적이듯 인간 또한 그런 숙명적 불안 때문에 바람둥이가 된다는.

“언니 가라. 나 오늘 무지 기분 잡쳤다.”

후다닥후다닥 거친 동작으로 손에 든 물건을 제 자리에 놓고 설치는 호남의 동작으로 보아 말하지 않아도 어서 자리를 뜨고 싶던 양지였다. 그래도 언닌데 제 기분대로 가라마라 무시하니 서운하고 무안한 감을 삭이기 위해 묻고 싶지도 않았던 질문을 일어서면서 던졌다.

“설계사무실 건은 어떻게 됐어?”

“용재엄마 일이 어떻게 될지 봐서……. 낼이라도 내가 전화할게.”

“내 생각도 그래. 차차 돌아가는 일 봐가면서 진행하자.”

호남을 멀리 떨어져 나왔을 무렵 양지는 긴장해 있던 가슴을 누그러뜨리며 심호흡을 조절했다. 베푸는 사람이 후해야 받는 사람도 고마운 법인데 호남은 한 번도 받는 사람이 따뜻하고 편하게 해주는 법이 없다. 성격 탓이라고는 하지만 양지는 그 점이 늘 아쉽다. 몇 번 지적을 한 적도 있지만 그때마다 호남의 대꾸는 당당했다.

“언니 닮아서 우리 내력이 그런걸 뭐. 언니는 뭐 나한테 그런 소리 많이 안 들었어? 때와 장소에 따라서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사람은 상대방을 거울삼지 않으면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한다. 저도 옛날에 그런 사람이었다니 할 말은 없지만 호남을 보고 있으면 양지는 늘 불안했다. 마지못해서 하는 것처럼 화를 함부로 내기도 하니 호남이 같이 살 집을 입에 올릴 때마다 겉으로야 바람직한 그림이 되겠지만 양지는 생각이 엇갈렸다. 제 땅의 그럴싸한 위치를 점찍어놓고 고객인 설계사에게 멋지고 안락한 설계도까지 부탁했다고 생색내며 자랑했을 때도, 양지가 소리 없이 웃으며 듣고만 있자 언니도 그럴싸한 아이디어 좀 제공해보라고 윽박지르듯 했다. 울타리 삼아 과일 나무도 심고 텃밭도 가꾸며 강아지나 닭도 몇 마리 기르면 좋을 것이다. 석양이 물든 저녁 하늘을 바라보면서 세 자매가 다정하게 산책을 하는 모습도 근사한 한 폭의 그림 같을 게 분명하다. 싫지 않은 제의였고 마다할리 없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제 성격대로인 마무리는 영 비위를 거스른다. 간과하고 있었던 간격을 깨달은 양지는 자꾸 뒷걸음질하고 싶어졌다.

걷다 돌아보니 호남의 업소 ‘황금박쥐’에 네온이 돈다. 힘들게 일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쾌락의 즐거움을 주는 대신 많이많이 와서 지갑을 열라 유혹한다.

호남이 많은 돈을 벌면....? 이 어정쩡하고 애매한 감정은 무엇인가? 나는 나쁜 년인가? 아니다. 뚜렷한 목표가 있고 자금이 필요한 때문이다.

“목표를 잃은 사람은 생활이 문란해지고 자멸의 가속페달을 밟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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