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5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52)
  • 경남일보
  • 승인 2017.12.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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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52)

위탁모에게 양육비를 부치는 것으로 한 시름 덜고 있는 가운데 어느새 자라난 아이는 외진 음지식물처럼 사랑과 관심의 목을 늘이고 있는 거였다.

양지는 수연을 끌어당겨 조심스럽게 조여 안았다.

“우리 수연이가 이렇게 큰 줄 이모는 정말 몰랐다. 네가 이모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꼭 알아볼게.”

“그래요 이모, 꼭 그렇게 해주세요.”

이번에는 수연이가 와락 양지의 목을 제 품으로 끌어안으면서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양지는 품에 안긴 수연의 새비린내나는 살 냄새를 맡으면서 잠시 병훈을 생각했다. 그들과 소식을 끊고 산지 어느덧 십여 년, 간간이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그의 프로필을 보면 어머니의 뒷받침과 미스 김의 내조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화단의 중견 대접을 받고 있었다. 병훈과 연줄을 대면 수연의 재능을 키우는데 어느 만큼의 도움이 될까.

양지는 수연이 일로 호남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또 구박만 당했다.

“언니도 참 말로 쌩짜배기 티를 낸다. 좀 말 같은 소리를 이치에 닿게 해라.”

전화를 끊고 한참 후까지 호남의 새된 목소리는 양지의 귀에 걸려서 앵앵거렸다. 직원들이 속을 썩혔거나 무언가 화난 일이 있었겠지. 아무리 돌려 해석을 하려해도 남아있는 응어리는 점점 더 단단해져서 양지의 자존심을 짓이겨 댔다. 수연이 본인의 희망대로 용재 네들과 어울려서 자라게 해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의논을 했던 것인데 철부지 아이의 말에 넘어가서 그런 뜻을 입 밖에 꺼낸 것부터 잘못이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거였다. 의논조차 하지말걸. 아니 의논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진 자신의 처지에 대한 모멸감 때문에 양지는 지금 목구멍까지 차오른 설음을 감당 못하고 있다.

호남이는 늘 저처럼 세상물정에 대한 상식이 해박하지 못하다고 양지를 비난할 때면 결혼도 안 해본 것을 은근히 빗대서 생짜배기라 타박 했다. 나중에는 제 언설의 강도나 내포된 뜻의 상반된 다른 의도까지 설명하면서 사과를 하기 일쑤였지만 요즘 들어 호남은 언니인 양지를 제 밑에서 일하는 아이들 나무라듯 얀정 없이 굴 때가 많다. 의견이라고 내는 것이 호남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들이니 뜯기는 자의 성가신 마음을 양지 스스로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호남이 지금 내고 있는 수연의 교육비도 용남언니네로 보내면 사례는 충분히 될 거라고 양지는 방편까지 말했으나 호남은 그게 아니라고 큰소리로 잘라버리더니 손님이 왔다며 저 혼자 일방적으로 전화까지 끊어버렸다. 언니야 니가 이 집의 기둥이다, 하면서 격려해주던 고맙던 동생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새 무사처럼 우락부락한 언행으로 언니를 나무라며 얕보는 동작까지 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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