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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61>박치기왕 김일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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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07  22: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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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품은 섬, 거금도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하면서/주먹을 쫙 펴고 하늘로 아래위로 흔들어/(챔피언) 소리 지르는 네가/(챔피언) 음악에 미치는 네가/(챔피언) 인생 즐기는 네가/(챔피언) 네가 (챔피언)’ 가수 싸이가 부른 챔피언의 한 부분이다. 맞다, 인생에서 챔피언은 ‘나’ 자신이고, ‘우리’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가치 있게 즐길 줄 아는 사람, 내 내면에 존재하는 ‘나’의 가치를 맘껏 발휘한 사람이 챔피언이다. 따라서 진정한 챔피언은 우리 모두라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가슴 속에 위대한 챔피언 한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 60, 70년대 가난하고 어두웠던 시대에 전국민에게 꿈과 용기를 준 챔피언, 바로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이다. 필자의 유년 시절, 잔디밭이나 흙바닥을 가리지 않고 레슬링 놀이에 빠지게 한 사람이 김일 선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필자의 고향마을에서 5리 길을 걸어서 학교 앞 자전거 가게 큰 거실에 놓인 흑백텔레비전 앞 돼지저금통에다 10원의 입장료를 넣어야 레슬링 경기를 시청할 수 있었다. 늦은밤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은 온통 어린 레슬링 선수들의 박치기를 막아내느라 두 팔로 머리를 감싸쥐었던 시절, 그 유년의 꿈과 추억을 더듬기 위해 국민체력센터(원장 이준기) 명품 걷기 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김일 선수의 고향인 전라남도 고흥군 거금도로 힐링여행을 떠났다.

거금도 휴게소에 도착하자, 은빛 찬란한 조형물 하나가 눈부시게 우리를 반겼다. 높이 20m의 거대한 사람 형상으로 만든 고흥의 랜드마크인 ‘꿈을 품다’이다. 꿈의 색깔이 은빛일까? 예로부터 인간을 큰 우주를 닮은 소우주로 표현한 것에 착안해 고요히 잠들어 있던 고흥을 마침내 깨어난 거인으로 표현한 조형물로, 이 거인이 하늘 너머 우주의 별에 손(꿈)이 닿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조형물의 하단부에서 거인의 무릎까지 휘감아 ‘흥겨움’의 의미를 나타낸 나선형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노란색의 거금대교 또한 장관이다. 은빛과 노란 꿈들로 이어진 거금대교 길은 나중에 걸어보기로 하고 진정한 챔피언을 만나기 위해 김일기념체육관으로 갔다.

 
   
▲ 그림같이 펼쳐진 거금도 앞바다.
   
▲ 거금대교 인도를 걷고있는 탐방객들.


◇대한민국 챔피언, 박치기왕 김일 선수

김일기념체육관 입구에 있는 두 개의 고흥거금야구장에는 겨울 전지훈련 온 야구팀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차가운 겨울 햇살 아래 방망이로 야구공을 치는 경쾌한 소리가 젊은 선수들의 꿈이 영글어가는 소리로 들렸다. 체육관 입구에는 김일 선수가 하얀 도복을 입고 당당한 모습으로 탐방객들을 반겨 주었다.

김일기념체육관에서 김일 선수의 일대기가 담긴 동영상과 전시실에 전시된 사진 등을 둘러보고, 텅 비어있는 체육관 정면에 당당한 모습의 김일 선수의 사진을 보니 새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챔피언의 생애가 더욱 궁금해졌다.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에서 태어난 김일 선수는 국내 씨름판을 평정한 걸출한 씨름선수였는데, 1956년 역도산의 레슬링 기사를 본 뒤, 레슬러의 꿈을 안고 28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밀항한다. 불법체류자로 잡혀 일본에서 1년간 형무소에서 복역하면서 역도산의 도움으로 출소를 하게 된 김일 선수는 역도산의 문하생으로 입문하게 된다. 주특기로 박치기를 연마한 결과, ‘원폭 박치기’로 불릴 만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며 프로레슬링 챔피언의 꿈을 이룬다. 60, 70년대 중반까지 ‘박치기 왕’으로서 20여 차례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은퇴 후 사업을 하기도 했으나 레슬링 후유증과 고혈압으로 쓰러져 투병생활을 하다가 2006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체육관 바로 앞에 단아한 모습의 김일 선수 생가가 있고, 그 생가 앞에 평장으로 된 묘소가 있다. 살아생전에는 국민의 영웅이었던 그가 소박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묘소와 생가가 찾는 이들을 더욱 감동케 했다.

가난하고 암울했던 시대, 박치기 한방으로 일본 선수들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통해 국민들에게 통쾌함과 더불어 꿈과 희망을 선물한 사람이 김일 선수다. 1967년 국민들의 영웅으로 떠오른 김일 선수를 청와대로 불러들인 당시의 대통령이 ‘임자의 희망이 뭐냐?’고 묻자, 고향 사람들이 자신의 레슬링 경기를 볼 수 있도록 고향에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이후 전국의 섬 중에서 가장 먼저 거금도에 전기가 들어왔다고 한다. 김일 선수는 운동을 하면서도 항상 국민과 고향 사람들에게 기쁨과 꿈을 심어 주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 김일 선수의 묘소.
   
▲ 김일기념체육관의 전경.


◇걸으면 소망이 이루어지는 거금대교길

거금도 둘레길은 붉은 노을길, 솔갯내음길, 바다 모자이크길, 섬 고래길, 월포 허리길, 두둥실길, 레슬러의 길 등 모두 7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길을 필자의 발목 부상으로 인해 트레킹하지 못한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상쇄하기 위해 거금도에서 소록도까지 이어진 거금대교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복층교량으로써 위층은 자동차, 아래층은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거금대교는 총길이 2028m나 되는 다리다. 바닥엔 소망의 길이라고 새겨 놓았다. 겨울 햇살에 잘 말린 꿈이 꼭 이루어지길 기원하면서 거금대교의 인도를 걸어갔다. 노란 다리 위를 걸으니 마치 동화 속의 바다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출발할 때 환호성 외치던 사람들이 다리 중간쯤에 이르자 드센 바닷바람 때문에 온몸을 움츠리며 말문을 닫았다. 소록도에 닿자 탐방객들은 다시 웃음꽃을 피웠다. 세찬 바람을 이기고 건너온 길이 어쩌면 탐방객들에겐 꿈을 이루게 하는 노둣돌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그 길에 ‘소망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인 까닭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일 선수가 프로레슬러의 꿈을 키운 거금도 ‘레슬러의 길’과 거센 겨울바람을 뚫고 거금대교 ‘소망의 길’을 걸으면서 새해에 펼칠 자신의 꿈을 설계해 보는 것도 무척 의미있는 힐링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다 위, 반짝이는 윤슬이 탐방객들의 은빛 꿈을 응원해 주는 듯 눈이 부셨다.

/박종현(시인·경남과학기술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고흥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조형물
고흥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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