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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시론] 다시 남명과 언론의 소명을 생각한다
변옥윤(객원논설위원·수필가)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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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08  1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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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새해벽두에 다시 한 번 남명 조식선생을 떠올린다. 그는 연산군에서 선조까지 5대의 왕을 경험했다. 몹시 혼탁하고 어지러웠던 시절이었다. 어릴 때는 연산군의 폭정을 경험하며 자랐고 중종반정과 명종대의 문정황후 수렴청정도 몸으로 겪었다. 지방관리들은 토색질로, 중앙의 벼슬아치들은 세력확장과 부패로 영일이 없던 시절이었다. 주변정세는 중국과 왜가 세력을 키우며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려 국제정세가 지금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 시대적 상황에서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은 같은 해에 나란히 태어났다. 19세기에 들어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자신의 적극적 의지로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행위를 앙가주망이라 규정했지만 남명과 퇴계는 영남좌도와 우도의 학파를 주도한 거두였지만 가는 길은 분명히 달랐다. 퇴계가 34살의 나이에 뒤늦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는 앙가주망의 길을 택했다면 남명은 수차례의 벼슬제의를 고사하고 후학양성과 실천학문의 길을 택했다. 두 사람은 단 한번도 대면한 적은 없지만 벼슬천거도 퇴계가 했을 정도로 학문적으로는 훈구세력에 맞서 개혁을 지향하는 개혁적 성향에 속했다. 시기적으로 조광조가 개혁정치를 도모하다 훈구파에 의해 좌절한 동시대적 아픔을 간직한 두사람의 역할은 후에 뒤돌아보면 양측 모두 일리가 있는 선택이었다. 남명은 퇴계가 단성현감에 천거했지만 마다했고 그 유명한 단성소를 올려 그의 강단 있는 소신의 일단을 엿보게 했다. 목숨을 건 소였다. 섭정으로 서슬이 시퍼런 문정황후를 지아비를 잃은 궁중의 과부로, 나이어린 왕을 고아로 지칭하며 중앙과 지방관리들의 만행을 신랄하게 비판한 소는 오늘날에도 거리낌 없는 언론의 참모습으로 회자된다. 퇴계의 참여 속 개혁에 조금도 밑지지 않는 행동이었다. 허리춤에 방울을 울리며 단칼을 차고 다녔던 그의 실천적 학문은 후에 많은 제자들이 의병으로 스승의 가르침을 따랐을 정도로 빛나 경의(敬義)사상으로 명명된다.

새해벽두에 그를 반추하는 것은 지금의 시대적 상황이 그의 실천적 학문정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사명을 되새기고 올곧게 가라는 시대적 명령을 준엄하게 여겨라는 의미가 단성소에 담겨 있다는 뜻이다. 넘쳐나는 미디어와 SNS로 세상은 어지럽다. 무책임한 ‘찌라시’ 수준의 언론이 난무하고 상황에 따라 논조를 달리하는 무책임한 상황에서 언론이 가야할 길을 단성소는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요약하면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입장에서 정론직필(正論直筆)과 춘추필법(春秋筆法)으로 사파현정(邪破顯正)하여 사회의 목탁이 되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돌이켜 보면 경남일보는 지금껏 그 길을 걸어왔다. 단 한번도 권력에 아부하여 배불러 본 적이 없다. 시일야 방성대곡(是日夜 放聲大哭) 이라는 사설로 유명한 장지연선생을 초대주필로 창간한 신문의 자본도 도민들의 투자였고 올곧은 소리로 일제와 맞서 정간과 폐간을 거듭했고 정부수립 후에는 정권의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해 핍박을 받아왔다. 급기야는 군부독제에 의해 강제 통폐합당했고 재창간후에도 비판의 기능에 충실해 왔다. 항상 배고팠고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제 갈 길이 무엇인지를 뚜렷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비판정신이다. 언론이 권력에 타협하고 아부하면 그것은 마치 소금이 짠 맛을 잃은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경남일보의 시대정신은 남명사상과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을 각오로 올린 단성소가 진정한 언론이듯이 창간이래 단 한번도 배불러 본 적이 없는 경남일보의 정신이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허리춤에 방울과 칼을 차고 경의사상을 실천하며 벼슬을 마다하고 후학양성에 일생을 바친 그의 정신은 곧 이 땅의 언론이 받들어야 하는 가야 할 길이다. 앙가주망이 사회와 국가발전에 기여한 것에 못지않는 것이 남명의 선비정신이 아닐까. 무술년 새해벽두에 남명을 다시 조명하는 것은 언론의 갈 길을 다잡고 우리지역의 남명이 재조명되기를 바라는 소망의 일단 이다.

 
변옥윤(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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