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단상] 겨울철에 느끼는 지난날의 회안
[월요단상] 겨울철에 느끼는 지난날의 회안
  • 경남일보
  • 승인 2018.01.0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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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된서리 칼날 같은 바람과 추위가 계속될 줄 알았다면 지난날의 삶의 발자취에 당장 지워버리고 싶은 회안만은 남기지 않았으리라.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흐리다가 햇볕 나고 또 비 뿌리는 것조차도 짐작 못한 우리의 감성은 얼마나 초라했을까. 변덕스런 날씨에도 초목은 결국 연두색옷을 갈아입었고, 우린 초목만큼 현명하지 못해 지금 겨울추위 같은 매를 스스로 때림으로써 아픔과 기쁨의 가치를 깨닫는지도 모른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건 서로가 안 그런 척, 관심 없는 척, 머리칼을 날리고 지나가는 봄바람 정도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진 않았을까. 그러한 생각과 위장이 자신을 속이는 거짓인 줄도 모르면서 우린 얼마나 자신을 높여왔던가. 그러한 자국이 결국 많은 아픔을 남겼고, 그 아픔이 아물기에는 수많은 시간이 흘러가야 된다는 것을 추운 겨울에 와서야 가까스로 깨닫게 된단 말인가. 과연 그러고도 우리가 슬기롭고 총명하며 순수하고 또 마음까지 너그럽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 품위를 높게 지키고 싶은, 그 그늘에서 진정한 용기까지 잃어버렸으며 자존심이 무엇이며 용기가 무엇인지 아마도 우린 알지 못했으리라. 자존심과 용기가 어떻게 서로 돕고 도와서 함께 존재해가고 있는 것인가를 우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깐. 아니 진실로 말하자면 용기란 오로지 사랑한다는 것을 사랑하지 않는 척 부정하고, 거짓으로 꾸미는 그런 것인 줄로만 잘못 알고 있었을 테니까.

아름다운 사랑이란 많은 고통을 극복한 노력의 대가라는 걸 알면서도, 현실적이고 감동할 만한 사랑이 영혼의 성숙에 다다르게 한다는 걸 왜 몰랐을까? 아니 알면서도 자기만은 예외인 듯, 사랑 그것을 부인해온 탓일 수도 있겠지. 이 세상에 인간이 존재하고부터 사랑이란 것을 하여 왔다면, 필히 거치지 않으면 안 될 아픔과 괴로움을 우리가 어찌 거부할 수 있었으리요. 결국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 번도 지난여름 대낮 불볕같이 솔직해 본 적 없고, 자기감정을 표현하며 불태워 본적도 없었으리라.

진실로 마음을 잘 다스려 가을 햇볕에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었다면 과연 지난날 사계절의 필름을 외면할 수 있었을까. 이제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봄바람을 타고 날고 싶은 흥분과 기대 속에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툴고 철없던 꿈의 껍질을 떨쳐버리고 당당히 사랑도 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자. 철저한 회안 속에 평범한 진리도 새삼 깨우치면서, 탐욕을 속죄하고 서 있는 겨울나무처럼 우리 역시 고행의 도를 닦으며 자신의 넋을 구원받을 수 있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

 
<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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