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경일춘추
장작(長斫)에 대한 추억
이덕대(수필가)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1.17  15:58:21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이덕대

새끼줄로 올망졸망 묶은 장작더미가 낡은 버스 통로에 가득 쌓여 사람이 타는 차인지 짐을 싣고 다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쌀이나 보리쌀을 두어 됫박씩 넣은 광목 자루도 간간히 눈에 띄고, 흐릿한 실내등의 불빛 아래 윤이 나게 닦은 새끼줄 묶은 항아리도 보인다.

읍내 가는 자취생들의 일요일 저녁 버스 속 그림은 어쩌면 6·25 사변 통 피난민 모습과 다름이 없었다. 그 속에 쌀자루와 김치 항아리, 풀어 헤쳐진 자신의 장작더미를 보고 가는 학생들의 마음은 부끄럽다 못해 아득했다. 버스종점에서 흩어진 장작을 수습해서 새끼줄로 다시 묶어갈 생각을 하니…,

장작(長斫)이란 단어는 길다는 의미의 장(長)자와 돌도끼로 베거나 찍는다는 의미의 작(斫)자로 이루어져 본래의 뜻은 ‘길게 찍는다’는 것이었으나 그 의미가 변환돼 도끼 등으로 통나무를 길게 찍어 만든 땔감의 의미로까지 확대됐다. 또한 장작은 음양오행 상 목(木)이고 봄이며 시작이자 재물이기도 하다.

가난했던 그 시절의 겨울에는 산골 어느 집이나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다. 정부가 산림녹화사업을 독려하던 시절이라 나무를 훼손하는 일은 엄격히 감시받고 통제됐다. 낙엽을 긁어 오거나 죽은 삭정이를 모아 오는 것이 전부였다. 장작은 귀했지만 도시 사람들에게는 겨울을 위한 필수품이었다. 그러다보니 읍내에서 자취를 하는 대부분의 학생들도 난방과 취사 겸용으로 일주일치 장작을 묶어 싣고는 일요일 저녁 버스를 탔다.

한참 멋을 부릴 나이에 장작더미를 들고 버스를 타는 것이 적잖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석유곤로나 연탄을 땔 수 없는 형편에 장작이나마 충분히 가지고갈 수 있는 것만도 혜택이라면 혜택이었다. 새끼줄로 묶은 장작은 사람들에게 밟히다 보면 새끼줄이 터지고 흩어져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고, 자신의 장작을 찾지 못한 학생들은 일주일동안이나 추위에 떨어야했다.

지금은 화석연료 사용으로 장작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그 시절의 따뜻함과 희망을 나르던 장작에 대한 기억이 쉬이 잊히지 않는다. 지난주 엄청난 한파가 몰아치면서 새삼스럽게 그 옛날 따뜻한 아랫목을 만들던 장작이 생각난다. 가난과 함께 장작을 싣고 가는 풍경도 사라졌지만 젊은이들의 미래가 그때보다 더 기대할만한지는 모르겠다.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이 많다. 날이 더 추워지면 그때 친구와 활활 타는 장작불에 도시오염들을 태우고 새로운 시작의 날들을 준비해야겠다.

이덕대(수필가)

경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