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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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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12  16: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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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자세하게 저의 내면에 개척되어있는 들판을 보시면 눈빛이 달라질 건데요. 사람은 어디서나 살게 되어있는 거였어요. 그리고 큰 나무나 큰 바위는 떠나지 않고 정착해서 제 자리를 지키면서 존재가치를 드높이듯이, 저도 큰 나무나 큰 바위는 못되지만 이제 여기서 제 역할을 하고 싶어요.”

“출신은 촌년이지만 정신은 어느 대도시 것들 못지않던 곧고 투철한 정신력을 나는 알지. 도대체 그게 뭔지 모르지만 나랑 가자. 가서 그 일을 거기서 하면 안 될까? 필요하다면 내가 도울 수도 있고.”

“모든 것은 때가 있다더니 지금 저한테 그 때가 도래하고 있는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고 있어요.”

“그 일이 뭔지 나한테 말해주면 안 돼?”

“다음에요. 아직 준비 단곈데 발설부터 해버리면 봉황이 날아가요.”

말을 돌리다보니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비유가 나와 양지는 크게 웃었다.

“봉황? 나하고 다시 인연 안 맺고 싶은 걸 둘러대는 건 아니고, 그 말 믿어도 되겠지? 나도 사실 인생길이 갈라지긴 했지만 최 실장이 꼭 이대로 시골에 묻혀서 한 세상 넘기고 말거라는 생각은 지금도 안 해. 이때가 그 좋은 때다 싶으면 나한테도 초댓장 줘야 돼. 꽃다발 들고 축하하러 꼭 올 거니까.”

양지의 완곡한 거절을 익히 알고 있는 성품에서 나온 것이라 강 사장도 인정한 모양이다.

“사장님이 지금도 저를 인정해주시니 정말 큰 힘이 돼요. 믿으셔도 돼요. 저도 이대로 그냥 제 인생을 탕진할 수 없어 각오 단단히 하고 있으니까요.”

“역시!”

강 사장이 격려의 힘이 실린 듬직함으로 양지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었다. 강 사장과 같이 보낸 시간은 여기서 만난 그 누구보다 대화가 시원시원하게 잘 통했다.

양지는 그날의 감동에 들떠서 제 복안을 미리 털어놓지는 않았다. 그때 아울러 병훈의 근황을 묻고 싶은 것도 참았다. 장애를 가진 수연의 장래와 연결 통로를 염두에 둔 타진이었다. 순간적인 마음으로는 어머니인 강 사장에게 직접 부탁해놓고 싶었다. 아쉬웠지만 그 역시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때가 되면 직접적으로 길을 열 수도 있는데 필요 없는 오해를 미리 사면 혹 뒤틀릴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퍼뜩 일었던 것이다. 강원도에서 보았던 그 황당한 장면에 대한 기억도 새삼 되살아나 혹시 그녀의 손주들이 유전 받지는 않았는지 궁금한 점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재롱에 대해서만 몇 가지 주고받는 곁두리 상식으로 만족했다.

“자식이 있나 누가 있나 찾아올 사람도 없고…….”

한숨을 섞어 중얼거린 강 사장은 해마다 차려 올릴 추 여사의 제수 비용으로 거금을 시주하고 는 한 번 더 양지의 손을 잡아끌다가 돌아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싶던 과거가 잠시 살아났으나 들추지 않으면 없는 과거 속으로 다시 또 가뭇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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