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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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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9  02:5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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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파젯날 꼬막장 봐 온다카더니 니가 여어 뭐 하러왔노. 내 화통에 열불 땡기러 왔나. 독하고 모진 것, 달라고 할 때 주지. 니가 뭐이 그리 잘나서 내 자슥 인생을 단명케 하노. 꼴도 보기 싫다!”

흐린 시선으로 상대방을 식별해낸 현태의 어머니가 댓바람에 구박을 퍼부었다. 큰아들을 잃은 후유증인 듯 후줄그레하게 많이 늙은 것을 첫눈에 알아보겠지만 언설에 배인 기백은 예전 못지않게 꼬장꼬장하다. 양지는 마치 아들 잡아먹은 며느리 족치듯 하는 현태어머니의 서슬 퍼런 울분을 감당하기 어려워 그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새삼스럽게 ‘그래, 여기는 내가 올 집이 아니지’ 하는 자각도 들었다. 그런데 왠지 당연히 받을 비난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며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다.

골목을 얼마간 걸어 나와 동구 밖 정자나무 아래에 이르자 누군가 뒤에서 소리치는 기척이 들렸다. 돌아보니 아픈 다리를 질질 끄는 뒤뚱 걸음으로 현태어머니가 ㅤ쫓아오고 있었다. 가까이 온 현태의 어머니가 눈물이 글썽하는 여린 눈빛으로 양지의 손을 덥썩 잡았다.

“이 놈의 인사야. 그렇다고 선걸음에 가나. 여꺼정 찾아 온 것 본깨 생각이 영 없지는 않았건마는, 와 그리 사나 가슴 속에 인병을 들이 놓고 그랬노.”

“……”

오래 그리워했던 어머니를 만난 듯 뜨거운 것이 울컥하는 충격으로 양지도 따라서 무너졌다. 두 사람은 묵혀 두었던 두터운 정을 확인하듯이 얼싸안고 두 몸을 조였다.

잠시 후에 아린 마음을 가라앉힌 현태어머니가 사양할 틈도 주지 않고 양지의 등을 밀었다.

“여서 이럴 기 아이라 집으로 가자.”

노동으로 단련된 튼실한 육체지만 이제 나이가 들었다. 전날의 그 당당함도 알맹이가 빠져나간 짚북데기처럼 겉모습만 부푸적하게 커 보일 뿐이다. 하지만 휘어진 막대기 같은 자세로 어기적어기적 걷는 걸음 속에 든 거역할 수 없는 장악력이 양지를 매달고 끌어당긴다.

“인연이 아니모 어짤 수 없는 기제. 이 나이에 그것도 모리겄나. 자 어서 이기나 마시 봐라.”

한 번 잃은 입맛이 좀체 돌아오지 않아 허기를 막으려 만든 것이라며 어정쩡해 있는 양지의 손에다 현태의 어머니는 시원한 감주 사발을 억지로 밀듯이 잡혀 주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식혜를 별로 안 좋아해서. 그냥 냉수나 한 컵 주세요.”

“뼈골이 쑤시고 해서 쇠물팍하고 골담초하고 좋다는 걸 몇 가지나 같이 삶아서 그 물로 담았은께 약도 된다.”

“그냥 냉수를 주세요.”

양지는 그냥 아무 것도 넘길 수 없는 심정을 그렇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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