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원로들 옹호 전에 과거 돌아봐야"
"문단 원로들 옹호 전에 과거 돌아봐야"
  • 연합뉴스
  • 승인 2018.02.1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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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내 성폭력 고발 김현 시인 산문집 ‘질문 있습니다’ 출간
“문제가 된 원로 시인을 ‘돌출적인 존재’라고 옹호하기 전에 스스로 가해자가 되지 않았는지, 방관하거나 묵인하지 않았는지 ‘나의 연루됨’을 되돌아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현(38) 시인은 인터뷰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문단 내 성폭력 문제에 관한 일부 중견ㆍ원로 문인들의 언짢아하는 반응을 이렇게 비판했다.

이는 특히 문학과지성사를 설립한 네 명의 평론가 중 한 사람인 김병익(80) 평론가가 최근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최영미 시인이 시 ‘괴물’로 고발한 원로 시인을 두고 “얌전한 한국 시단에서 돌출적인 존재”라며 “너무 벗겨서 드러내기보다는 알면서도 모른 척 지나가는 그런 관대함”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김 시인은 “성폭력 유형들이 패턴화해 술자리에서 가볍게 ‘격려하듯이’ 이뤄지는데, 이건 문단의 문제만이 아니라 법조계, 영화계 다 패턴이 비슷하다. 돌출적인 존재가 아니고 엄청나게 뻔한 존재인 것이다. 이를 한 시민으로 봤을 때 인식의 전환을 하지 않으면 문제인지 모르는 상황이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럼에도 아직 문단 일부에서는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게 문제인데, 그들은 ‘모두 다 그런 건 아니다’라고 얘기하지만, 이를 다시 말하면 ‘모두 다 그랬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이 그런 문제에 연루되지 않았는지 돌아보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2016년 ‘21세기 문학’ 가을호에 기고한 ‘질문 있습니다’란 글에서 남성 문인들이 술자리에서 일상적으로 여성 문인들을 비하하거나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등 여성 혐오와 성폭력이 만연한 문화를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문단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문인들로부터 성폭행이나 성추행, 성희롱을 당했다는 폭로가 SNS에서 잇따라 터져 나왔다.

김 시인은 당시 문단 내 성폭력 ‘미투’ 운동의 도화선이 된 글 ‘질문 있습니다’를 비롯해 이후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인권 운동, 좋아하는 시와 친한 문인들에 관해 쓴 글들을 모아 산문집 ‘질문 있습니다’를 최근 출간했다.

이 책에 실린 ‘자수하세요’란 글은 1년여 전에 쓴 것이지만, 지금의 상황을 예견한 것처럼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었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인식하거나 인식하지 못한 채) 수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원로 작가들이 문단 내 성폭력ㆍ위계 폭력 연쇄 증언을 인지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만약 그들이 다 알면서도 그 시절은 젊었고 지금은 늙었다는 이유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거라면, 나는 비로소 그때 그 자리에서 한국 문학은 망했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략) ‘작가로서 훌륭했으나 인간적으로 흠이 있었다’라는 회고는 윤리적으로 가능한 회고가 아니다.” (143쪽)

“적어도 내 편에서 시작한 고발은 누구까지가 아니라 어디까지 가 보려고 한 것이었다. 가령 원로 시인 아무개가 강연장에서 여성에게 술 시중을 들게 하는 것을 많은 이들이 원로 작가의 위트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까지.”

김 시인은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사태가 지났을 때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어떤 위치에 있고, 피해ㆍ고발ㆍ증언자들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이다. 그동안 가해자들은 언제나 타격을 입어도 여전히 그 위치에서 가진 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고발자는 이후에 뭔가가 날아갔다. 이걸 지켜봐야 한다”며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문학의 장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전했다. “최영미 시인이 1990년대의 일을 말했는데, 이후 십수년이 지나면서 여성주의 운동도 있었고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고 변화도 있었어요. 표절 사태를 겪으면서 문단ㆍ출판 권력을 점검하는 목소리도 있었고요. 대안적인 창작ㆍ출판 공간을 만들어가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대안적인 움직임의 하나로 그는 2015년 2월 강성은, 박시하 시인과 함께 독립 문예지 ‘더 멀리’를 창간해 2년간 격월간으로 발간했다. 150여 명의 정기구독자를 확보해 성공적으로 운영하다가 12호를 마지막으로 휴간에 들어갔다. 남은 정기 구독료는 구독자들의 뜻을 모아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 지원 기금으로 기부했다.

연합뉴스



 
김현 시인.
산문집 ‘질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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