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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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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8  00: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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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 어쩜 그런 일이. 설마 설마 했더니 제가 집사 아주머니한테 들은 말이 사실이었군요.”

영석은 깜짝 놀랐고 어이없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듯 했다.

“네 반응이 그렇게 나오는 걸 보니 몹쓸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우선 안심이다.”

“고모, 사실은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이딴 겉과 속이 다른 세상이 아직도 존재한다니. 제가 왜 인문계보다 연구 파트에 더 목매달 듯이 매진하는지 그게 그 이유입니다.”

영석은 아주 침음해진 목소리로 자기네 각시와 틈이 벌어진 이유를 실토했다.

외가가 유학자 집안의 명문인 영석의 아내는 자주 영석의 백정 혈통을 화제 삼아 농담을 했다. 젊은 부부의 애정 섞인 말장난이었지만 한 번 두 번 화제에 오르는 동안 영석이 아무리 아버지가 뜻하는 형평운동 선양에 대한 학술적인 설득을 해도 견해 차이로 인한 젊은부부의 언쟁은 차츰 틈을 비집고 간격이 벌어졌다. 이러다보니 별스럽지 않은 의견 충돌도 각자의 인성대로 사사건건 옥신각신해졌고 냉전으로 발전했다. 유학자 집안의 딸인 장모나 어른들이 안다면 영석이 양지를 고모라고 호칭하는 것도 흉거리가 될 거였다. 처음 양지와 인사를 나눈 날 영석은 저 먼저 양지에게, 친척 아주머니라면 너무 나이 많거나 먼 관계처럼 친밀감을 느낄 수 없으니, 아버지의 동생 호칭인 고모로 부르는 게 좋겠다 했고 양지도 흔쾌하게 그 뜻을 받아들였다. 겉으로 세련된 사람들은 이 시대에 반상이 어디 있느냐고, 입으로는 점잖은 척 말하면서 썩지 않은 시체처럼 아직도 저 병폐스러운 개념을 행사하여 이 시대의 동량을 속앓이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고모 다시 생각해도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 같아요. 아버지 어머니한테 말씀 안 드리고 처리한 일은 참 잘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제가 다시 전화 드릴 때까지 부모님 모르시게 고모가 좀 알아서 해주세요. 다녀와서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영석과의 통화는 원만하게 끝났다. 다시 얼마 동안 철통 보안을 하고 있으면 원만한 해결이 날 것이다. 영석은 아내의 집을 나와 오피스텔 생활을 하고 서로 연락을 하지 않은지 꽤 됐다고 한다. 하 씨의 말대로 문제도 안 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먹고 살 걱정 없이 잘 사니까 너무 심심해서 일부러 문제를 만드는 것 같은 현상이다. 인생 선배 하 씨는 그 다음에도 따끔하게 정곡을 찔렀다.

“사람이 사람을, 아아나 어른이나 사람을 예사로 취급하모 그 나라, 아니 그 집구석도 종치고 날 새는 깁니다. 사람이 뭣 땜에 일은 하는데요. 사람이 없는데 성공을 하고 부자가 된들 뭔 소양이라요. 아무리 성공한 업적도 지킬 사람이 없이모 쫄딱 망하고 쑥 대밭 된다 이 말인기라요. 아, 사람이 없는데 누가 지키고 발전을 시키나 이 말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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