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프 > 연재소설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598)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3.08  22:59:31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하 씨의 말 속에는 자신의 신분에 빗댄 억하심정도 포함돼 있어 울림이 깊다. 그러나 어쩌랴, 물질문명의 발달로 생활이 편리해진 반면 이기적인 개인주의에 의해 인명경시 풍조는 예전과 다르게 빈번해진다. 민심이 천심이라 했다. 그래서 양지는 자신의 미력이나마 그 천심을 지키고 싶어진다.

수연의 바람대로 용재의 집으로 수연을 데려다 주었다. 용남언니의 이식수술이 지연된 잘못이 마치 자신들의 잘못인양 송구함을 감추지 못하고 사돈 댁 식구들은 더 친절하게 수연을 데리고 온 이모들을 접대했다. 호남이 호기 있게 준비해 간 가전제품을 고장 나고 낡은 것과 바꾸고 김치냉장고, 전자렌지 따위 신식 제품을 제자리 찾아서 앉힐 때는 동네 사람들도 부러운 눈길로 달려 나와 도와주었다. 신이 난 수연이 제 이종들의 일터로 따라 나가는 것을 보고 난 후 양지와 호남은 차를 돌렸다.

“언니 말대로 하고나니 나도 숙제를 마친 것처럼 기분이 홀가분하게 좋다. 우리 이 기분으로 저녁이나 같이 먹자.”

각자의 일을 하다 식당에서 나중 만나기로하고 그들은 헤어졌다.

호남이 지정한 식당에 양지와 귀남이 먼저 도착을 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호남이 오지 않자 성급한 귀남은 아예 출입문에다 눈길을 고정시킨 채 조바심을 냈다.

“지가 물주라고, 언니들 기다리게 해놓고 이게 뭐하는 거고, 제삿밥도 아니고. 배고파 죽겠는데. 가시나, 그 편한 손 전화나 너하고 나한테 하나씩 사 주모 안 되나. 이럴 때 늦으면 늦다고 연락도 할 수 있고 얼매나 좋을 기고.”

“참 언니도, 호남이는 사업상 필요하지만 집에 전화 있는데 우리한테 그게 뭐 필요해. 곳곳에 공중전화도 있는데.”

“공중전화 있는 거 누가 모리나. 또 그 가시나 역성들지 말고 치아라.”

“그게 너무 비싸서 아무나 못 가져. 앞으로 흔해지면 그때는 몰라도.”

“괴나 개나 다 하는 거 그 때는 나도 싫다.”

양지는 울컥 하는 심정으로 언니의 무능력을 지적하고 싶었다. 사실 귀남은 아무런 역할이나 직업도 없이 호남이 주는 용돈을 받아쓰고 말썽을 부리는 것 밖에 하는 일이 없는 상태인데 불평불만만 무성하게 내지른다.

염치없는 그런 언행도 모두 병인일 수 있다는 판단으로 참고 봐주는데 때론 자기의 처지를 망각한 채 너무 뻔뻔스럽게 나와 한 대 패주고 싶을 때도 많다.

“봐라봐라. 우리가 여서 기다리는 줄 알면서 카운터로 전화는 와 한 번 안 하노.”

기다리는 시간의 밭은 감정을 담배로 땜질 하면서 귀남의 목소리는 노골적인 불쾌함으로 변해갔다. 매캐하게 흡입되는 담배 연기를 손부채질로 날리며 양지가 말했다.
경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