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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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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2  22: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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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행동을 인정해주는 말이라 여긴 귀남의 침묵으로 입씨름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잠시 후 손목시계를 들여다 본 귀남이 또 어린애가 칭얼거리듯 한다. 처음부터 이럴 경우를 예상해서 넓은 홀 구석자리를 잡았던 터였고 지금은 손님도 별로 없는데 귀남의 바닥난 인내심은 짜증으로 표출된다.

“이게 참, 약속 초가 시간이 얼만데 아직도 안와.”

“언니야 조금 만 더. 정 배고프면 우리 먼저 뭘 좀 시킬까?”

은근한 목소리로 양지가 양해를 구하자 귀남은 또 불붙는 마른 잎처럼 바르르했다.

“그래 난 언제나 나쁜 년 죽일 년이고 너희 둘은 죽이 잘 맞지.”

양지를 한 번 흘겨준 귀남은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귀남이 쑥 사라져버린 문 밖 거리의 어둠을 바라보면서 양지는 눈을 감고 미간을 모았다. 호남의 남성적인 성격이 봄볕처럼 노골노골하게 누그러지거나 오랜 소외감과 열등감 속에 잠재 된 귀남의 병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아웅다웅하는 자매지정은 죽도록 지속될 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부딪칠 때마다 언제나 양지 자신이 같이 있으면서 막아낼 수도 없는 노릇인데 누가 곁에 있어서 혹시 일어날 지도 모르는 어떤 상황을 가로막을 것인가. 이렇게 모임이 만들어지면 무사하게 헤어질 때까지 양지는 늘 조바심을 안고 있다.

물 두 잔을 거퍼 불 끄듯이 마시고 있을 때쯤에야 호남이 도착했다.

“이거 찾아오느라 좀 늦었다. 설계사가 출장 가서 늦는 바람에.”

남자처럼 씩씩한 걸음으로 들어 온 호남은 늦게 온 인사 대신 잉크가 묻어날 것 같은 설계도를 꺼내 탁자위에다 펼쳐놓았다. 좀 전에 보였던 안달 때문에 서먹해진 귀남도 뚱한 모습으로 같이 들여다본다. 세 자매가 같이 모여 살 집이어서 꼼꼼하게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느라 신경 많이 썼다는 설계사에 대한 공치사도 덧붙였다.

거실은 나중에 용재의 가족들과 수연이, 거기 딸린 사람들도 다 모였을 때를 감안해서 최대한 넉넉하게 만들자는데 일치를 보았던 대로 널찍한 공간이 도면의 중간에 자리 잡았고 늙은 자매들에게 남아있을 최소한의 사생활을 유념한 깐에 이들의 방은 거실 주변으로 창이 보이도록 각각의 화장실까지 딸려서 독채처럼 배치를 했다. 이층은 아이들의 공간으로 꾸며주고 멀리서 보이는 삼사층 지붕이나 베란다는 동화 속의 그림처럼 만들게 되어있다. 사철 자연을 받아들일 수 있게 통유리 이중창을 만들고 온갖 생필품을 편리 위주로 구입하여 여한 없이 잘 살아보자며 호남은 자신감과 열기를 토해냈다. 호남이 욕심껏 지어낸 집은 규모나 예상하는 비용으로도 가정집이 아니라 작은 성채나 다름없다. 꿈에 그리던 한의 궁전. 제가 번 돈을 제 뜻대로 쓰는 일은 돈 버는 목적인데 탓할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다. 넓은 정원으로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토질에 맞추어 심은 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등의 과일이 철따라 실한 열매를 익힐 것이며 저녁볕이 남아있는 질양지에 핀 무수한 들꽃들이 바람에 춤출 때면 자매들은 정답게 웃으면서 산책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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