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 저금통
빗물 저금통
  • 경남일보
  • 승인 2018.03.1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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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숙영(수필가)
허숙영

이웃 아파트 옆을 지날 때다. ‘빗물 저금통’이라는 선명한 고딕체 이름표가 붙은 원통형 물받이가 눈에 띈다. 어른의 허리춤 높이에 1t가량의 물을 받을 수 있는 푸른 통이 아파트 관리실의 천장 홈통과 연결되어 있다. 정말 옆구리에 든든한 저금통 하나 끼고 있는 듯하다. 저금된 빗물로 먼지 날리는 마당도 씻고 나무에도 주니 가뭄에도 쭉쭉 잘 자라 여름이면 우리가 다니는 길을 그렇게 온통 그늘로 드리웠나 보다.

신선한 발상의 빗물 저금통에 내 마음까지 촉촉해지며 잊고 있던 옛 모습이 떠오른다. 비가 오면 볏짚 처마아래 놋대야며 양철 두레박, 빈 장독 등 온갖 종류의 그릇들을 줄 세워 빗물을 받았다. 그릇의 재질이 다르니 물이 떨어지며 내는 소리도 제각각으로 화음을 맞추었다. 때로는 실로폰 소리로 또 드럼소리로 파문을 그리며 떨어지는 동그라미를 보며 나도 섬돌에 놓인 고무신까지 꺼내 빗물을 받으며 우쭐거렸다.

한 대야의 물은 세수를 하고 나면 걸레를 빨고 다시 장독둘레의 화단으로 혹은 거름더미에 끼얹었다. 빗물 한 줄기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어른들을 보며우리도 자연스럽게 배웠다.

우리나라를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비단결같이 깨끗한 자연환경이어서 두 손 모아 시냇물을 떠 목을 축여도 되던 때가 있었다. 수로를 따라 물은 쉼 없이 흘러내렸고 도랑에도 물마를 날이 없을 만큼 깨끗한 물이 넘쳤지만 함부로 쓰지 않았고 욕심도 부리지 않았다. 부엌에 놓인 물독의 물도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그만큼 아끼는 습관이 내 몸에 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을 지나치게 아껴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내 습성을 바꿀 생각이 없다.

세탁 후 마지막 헹굼 물은 받아다 화장실에 쓰고 쌀 씻은 물은 화초에 주기도 한다. 빗물저금통을 설치할 수 있다면 벌써 했을 것이다. 그 많던 물은 다 어디로 흘러가 버렸을까. 우리가 어쩌다 물까지 사 먹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생명수인 물을 너무 펑펑 쓰는 것이 아닐까 싶을 때면 나는 목이 탄다.

시골에도 이제 물 흐르는 도랑을 보기 힘들다. 동네 앞 물 흐르지 않는 도랑에는 음료수병, 농약병, 스티로폼 같은 생활 쓰레기들이 즐비하다. 폐비닐이 낙동강가의 나무 곳곳에 걸려 허옇게 유령인양 너풀거리는 것도 본 적 있다. 그것들이 물길을 막고 폐수가 되어 목을 조를 것이라 꿈에도 생각지 못한다. 너무도 뻔한 미래를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빗물 저금통 하나씩 마음에 마련했다가 어지르진 생각들을 씻어낼 수는 없을까.

허숙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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