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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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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4  01: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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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는 그때 엉뚱하게 고향의 찬샘을 떠올렸다. 비록 규모는 형편없어도 용재네 남매들과 어울리던 수연의 모습이 정답이다. 사랑과 평화가 있는 곳 양지에서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이들. 산과들을 헤쳐 다니면서 떠들다 저녁이면 편히 쉴 수 있는 아늑한 집으로 돌아오는 남매들. 마음만 맞으면 된다. 큰 아이가 쓰던 물건을 동생이 받아쓰고 언니는 동생의 부족한 부분을 돌봐주는 속에서 그들은 나눔이나 배려의 소중함을 일깨워 갈 것이다. 부족한 물질에 연연하지 않고 없는 것을 인정하는 협력과 창의를 숙의하는 동안 품성도 원만하게 성숙해질 것이다. 양지는 그들을 돌보게 될 자신의 정신과 행동이 어떠해야 그들이 원하는 행복을 도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문지식도 심도 있게 공부할 것이다. 한풀이로 지은 호남의 집은 아이들을 키우기로는 너무 인공적이고 도시적이다. 양지의 깊은 생각을 깨뜨리듯 귀남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럼 내 수술은 언제 할 건데?”

귀남이 먼저 순서를 묻는 건 가지고 있던 죄책감 때문이리라.

“그 일은 그 일이고.”

시큰둥하게 탁 자르는 호남의 말에 무안해진 귀남의 안색이 싹 바뀌었다. 수습은 언제나 양지의 몫이다.

“언니 말도 맞다. 한 쪽은 죽네 사네 하는 기로에 서 있는데 당장 잠잘 데도 없이 노숙생활을 하는 것도 아닌데 새집공사를 시작하는 건 사돈어른이나 조카들 보기에도 좀 그러니까 뒤로 우선 좀 미루자.”

“그러던지.”

모처럼 기분 좋았던 일을 잡친 듯이 펼쳐놓았던 설계도를 거침없이 착착 접어치우면서 호남이 툭 뱉어냈다. 더친 분위기는 양지가 다스렸다.

“이제 곧 낮 시간도 짧아질 건데, 공사는 봄에 하는 게 좋다고 오빠도 그러더라.”

“쾌남이가 말하는 보육원도 지어야 되고, 집도 짓고, 돈도 엄청 많이 들겠다. 갈쿠리로 긁어들이도 모자랄 것 같다. 그럼 집 지을 때 나는 뭘 해야 돼? 우리 다 같이 살 집인데 나도 무슨 일이든 거들어야 안 되나?”

강한 동류의식으로 귀남이 끼어들자 몽둥이로 짓지르듯 호남이 뒤를 받는다.

“언니는 수술만 잘 받고 가만히 있는 게 도우는 거야. 또 도망가는 낭패스런 짓만 안 일으키면 된단 말이야.”

귀남의 돌발적인 행동 때문에 여러 사람이 겪고 있는 골치 아픈 비명의 연장이다. 순간 열등감을 가격당한 귀남의 눈길이 호남을 쏘아보았지만 주문한 음식이 들어오는 바람에 가까스로 분위기는 수습되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 제법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회복한 자매들은 자연스럽게 호남의 사무실 겸 내실로 자리를 옮겨 같이 들어갔다.

소화제 한 잔으로 맥주도 곁들여 놓이자 이런 저런 이야기들 끝에 호남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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