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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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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4  21:5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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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하고 싶다는 사업도 좋은 뜻인 줄은 아는데 우리들 힘으로 시작하기로는 무리가 있어. 내가 도와주는 액수 정도로는 택도 안 되게 돈도 많이 들 건데, 그래서 하는 말인데 언니가 전에 해본 공장을 다시 해보던지 대리점 같은 걸 다시 해보는 건 어때? 그 자금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우선 투자를 할게.”

남의 밥보고 숟가락 먼저 들다 들킨 격이라 양지는 얼굴이 화끈했다. 게다가 자금까지 댄다니 성의 있는 제안이고 고맙기도 하다. 그러나 양지는 목장일로 자리 잡은 안정을 버리고 호남에게 등 떠밀려서 서리 찬 새벽거리로 또 다시 밀려나는 기분이다. 돈이 드는 일이니 우선 돈을 벌어야한다는 건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때는 오직 무엇이든 젊음을, 인생을 소진시켜야만 얻을 수 있다는 오기의 한 방편에 다름없었는데 그 일을 타의에 의해서 다시 하라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강 사장이 차려놓은 밥상에 반찬과 숟가락을 놓았던 격이지 뚜렷한 기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좋은 뜻이라고 누구나 같은 생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것은 자매라도 마찬가지이다. 같이 가자던 강 사장 말을 거절한 것을 알면 이들은 어떻게 나올까. 하지만 양지는 솔직한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자 건배!”

양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아랑곳없이 호남은 앞에 놓인 술잔을 들며 외쳤다. 양지가 더러 하는 말을 그녀도 비슷한 심경으로 덧붙였다.

“이제부터 우리 셋이 힘을 합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니 너무 기분이 좋다. 사람의 한 평생, 그 많은 세월을 오직 저 혼자 잘 입고 저 혼자 잘 먹기만을 위해서 살다가는 건 너무 초라해.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도 한심하고 허무해. 그렇지만 남을 위해서 쓸 만큼 많이 벌지도 못했는데 돈 들어갈 자리는 범 아가리 모냥으로 사방에서 나타나니…….”

호남이 생색용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말을 듣고만 있자니 나약한 모습을 들키는 것 같아 양지는 평소대로 지론을 편다.

“꼭 돈으로만 남을 위한다고 생각하니까 못하는 거더라고. 내가 갖고 있는 것, 멀쩡한 육체도 있고 남이 못 보는 곳을 보는 눈도 있고, 뭐 그런 걸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면 돼. 일테면 쉽게 말해서 무거운 짐을 싣고 가는 리어카를 서슴없이 뒤에서 밀어주는 마음가짐 그런 쉬운 것부터, 뭐든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실천하기 쉬운 것부터 하면 되니까 너무 짐스럽게만 느끼지 마라.”

“아하 그래서 쾌남이는 오빠 따라서 복지원에 자원봉사도 다니는 구나.”

양지의 말에 격한 공감을 보이는 귀남의 대꾸에 호남이 조금 머쓱한 기색을 보이는 바람에 분위기가 어색해졌지만 양지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모든 일은 바라는 대로 곧바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가운데 여물어진 바탕 속으로 슬그머니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그 결과를 이끌어 내는 역할과 조절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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