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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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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6  00:2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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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만이라도 화목한 자매들의 분위기에 감동한 모양 말없이 듣고 있던 귀남은 술에 약한 대로 아까부터 머리를 흔들면서 발그레 홍조 띈 얼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녀의 잔 몸짓은 무언가 생각이 끓고 있을 때 보이는 그녀 특유의 전조였다.

“참 좋은 말이다. 쾌남이 니는 역시 우리 집 기둥 노릇할 자격이 있다. 좀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도 다시 겁 안내고 용재엄마한테 콩팥기증 해줄게. 이번에는 도망 못 가게 니들이 내 몸을 꽉 묶어. 약속할게.”

모두 얼잔이나 취한 상태였다. 순간, 들고 있던 크리스털 잔을 탁, 내려놓으면서 귀남을 쏘아보는 호남의 눈빛이 심상찮았다.

“또! 또! 내가 그랬지, 말부터 앞세우지 말라고. 멀쩡한 사람들 모두 황당하게 만들고 실망시키고, 또 그 따위 짓 안한다고 누가 보장해.”

높은 소리로 윽박지를 말은 아닌데. 이렇게 오래도록 같이 있는 게 아닌데. 실기를 깨달은 양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도로 주저앉았다. 기분 좋아서 마신 술이지만 가랑비에 젖은 옷처럼 온몸이 처져 내렸다.

야, 다르고 예, 다르다는 격으로 언제나 큰 호남의 목소리나 억양은 언니인 귀남을 호통 치듯이 들린다. 삽시간에 귀남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귀남은 단박에 어떤 반응을 나타내지는 않고 애써 맑은 정신을 유지하려는 듯 앞에 놓인 얼음그릇에서 각 얼음을 꺼내더니 아그작아그작 소리 나게 씹어 먹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포탄의 초침처럼 위기를 뿌리는 동작이다. 드디어 귀남의 반응이 음성으로 나타났는데 놀랍도록 차갑게 냉각시킨 어조였다.

“넌 언제나 그런 식으로 날 잡더라. 내가 벌레냐? 때려죽일 짐승이냐? 내가 정신병자 되고 싶어서 됐어? 나도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식구들하고 같이 살고 싶었어. 그래도 내가 이렇게 됐을까?”

“아아, 저 소리 또 나온다. 엄마가 해주는 밥 먹은 우리도 별거 없었어. 핑계 대지마, 너처럼 심약하면 모두 그렇게 돼.”

그 순간 귀남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이년아, 나는 심약해서 그렇게 됐다. 형제라고 따뜻한 말은 못해 줄망정, 사사건건 비난만 했지. 내가 그렇게 귀찮고 성가시면 그렇다고 말해. 네 속 시원하게 칵 없어져 줄 거니까!”

“언니, 난 못산다. 우리 언제까지 이 형벌을 받고 살아야 되는 기고, 부모 밑에서 산 우리는 뭘 그렇게 사랑받고 혜택 받으면서 살았다꼬.”

뒤범벅된 열기와 술기운으로 격앙된 된 호남은 제 손으로 머리통을 벅벅 긁어대더니 그래도 부푼 성깔을 어쩌지 못하고 취기에 눌려있는 양지를 잡고 흔들었다. 정신 건강이 미약한 사람을 어쩌느냐고 양지가 타이를 때마다 콧방귀로 날려버렸던 호남이다. 귀남이 역시 찔린 상처를 방어하기 위해 비수를 항상 소지하고 다녔다는 비유가 옳다. 호남을 향해서 그녀가 날린 일격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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