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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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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0  22: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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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개만도 못한 년아. 난 그래도 너처럼 잡년으로 놀지는 않는다.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새파란 애들 데리고 놀면서 나잇살이나 처먹은 게 돈이면 다냐? 나 나무랄 자격 있는 년이냐 넌?”

친자매라는, 천륜의 튼실한 줄을 자르는 차마 입에 올려서 안 되는 비수가 날았다. 서로 헐뜯는 입씨름은 심심치 않게 있었던 터라 오늘도 다른 날처럼 그러다 말리라 여겼으나 그게 아니었다. 서로를 연민하는 사무친 감정으로 내뱉다 보면 어느 결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풀려있던 날과는 아주 다른 위기까지 감돌았다. 얼마 만에 쓰러지나, 몇 번에 쓰러지나, 대치의 강도는 치밀한 계산처럼 상대방의 인내를 허물고 있다. 호남이 가만있을 리 없다.

“흥 부러우면 부럽다고 하지. 아무 것도 없어서 못하는 년, 심뽀나 바로 쓰면 밉지나 않지. 위선 떨지 말고 너도 해봐. 필요하면 돈도 줄 거고 물건도 제공해 줄게.”

“카악, 이 가시나가 그냥!”

귀남이 다시 악을 쓰면서 자리에서 일어서고 그들 가운데로 양지가 들어서 막았다.

“또 지랄들 한다. 이것도 애정 확인이라 믿어야 되겠지? 안되겠다. 오늘은 이만 헤어지자.”

양지는 얼른 종업원을 불러 콜택시를 부탁했다. 독신으로 모여 사는 자매들의 아슬아슬 남부끄러운 장면을 혹시 종업원들이 봤을까 부끄러움도 들었다. 하지만 귀남은 그 사이에 격렬했던 말싸움도 잊은 듯이 노래방 타령을 한다. 언제나 소리쳤던 십팔번으로 제 가슴에 쌓여있는 한과 설음을 또 외치고 싶은 것이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이제는 갈 수 있는 고향마저도 영원히 사라진 가여운 귀남.

양지는 후줄근한 채 달리는 차 속에서 주기로 몽롱해지는 정신을 수습하느라 눈을 부릅뜨며 머리를 흔들었다. 어디선가 들리는 요란스런 코골이에 놀라 눈을 돌리니 어느새 비스듬히 곯아떨어진 귀남이 내는 소리였다.



풀숲 여기저기서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또 한해가 간다. 그러나 이 가을은 전과 다르다. 단풍을 즐기고 겨울 한 철만 보내고 나면 새봄이 올 것이며 이미 계획된 일들이 자매들과 같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계절 탓으로 피부는 까칠해졌고 눈빛도 예민하게 빛났다. 호남은 벌써 나이 든 언니들의 겨울 화장품과 방한복을 사주었다. 근거리에 사는 형편이니 안보면 보아야 될 일이 생기고 만나면 또 고양이 노름으로 아웅다웅했지만 성격이 다른 자매들의 바뀌지 않을 일상이라 받아들이고 산다.

그런데 그 날은 유난히도 하늘이 높았다. 구름도 한 점 없었다. 단풍이 물드는 앞산을 바라보면서 귀남이 긴 머리 손질을 하고 있는데 호남이 일삼아서 귀남을 찾아왔다.

방으로 들어 온 양지는 소복하게 담긴 단감 그릇과 과도를 챙겨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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