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경일춘추
동행
허숙영 수필가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3.27  18:09:22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새벽에 눈을 떠 벽에 걸린 전자시계를 본다. 두 눈을 찡그리면 숫자들이 제법 선명하게 보였는데 오늘은 빛이 번져 온통 시뻘겋다. 요즘 들어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 같아 더럭 겁이 난다. 앞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눈을 감으니 세상은 암흑이다.

이 암흑 같은 절망을 딛고 일어선 사람만이 참가 자격이 있는 패럴림픽이 열렸다.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양재림 선수는 아무런 의심 없이 새하얀 눈 위를 미끄러져 내려온다. 그녀의 몇 발짝 앞에는 비장애인인 가이드러너가 보조를 맞추어가며 목이 터져라 안내를 하고 있다. 주황색 스키복을 입고 쉼 없이 방향을 알려주고 때로는 잘하고 있다며 용기를 준다. 활강을 할 때는 고운 나비 한 쌍이 난다 해도 좋을 듯하다. 환상의 호흡을 맞추며 아찔한 스키를 타는 그들 앞에 장애는 넘지 못할 벽이 아니다.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다. 무릎이 꺾일 때마다 보는 내가 오히려 숨이 막힐 듯 조마조마 했다.

이들에게 순위나 메달의 색깔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서로 티끌만한 의심도 없이 무조건 믿고 달린다. 패럴림픽이 그리스어로 ‘나란히’ 라는 뜻의 ‘para’와 ‘올림픽’의 합성어이듯 누군가와 함께 하는 한 못해 낼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느닷없이 팔이나 다리를 잃는다면 죽음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온 그들은 인간승리의 금메달을 이미 목에 걸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준 가족이나, 본래 제 몸 인양 의족을 깔맞춤 해 주는 의지 보조기사도 또한 동행자이다.

휠체어에 앉아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며 축제의 서막을 연 클론의 구순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성화봉을 등에 짊어지고 남은 손으로 줄을 번갈아 당기며 양 의족을 힘겹게 옮겨놓는 선수는 세계인을 숨죽이게 했다. 의수에 붓을 끼워 ‘하나 된 열정’을 쓰고 그린 화백의 크로키는 편견을 사라지게 했다. “나도 했듯이 모두가 할 수 있다” 며 희망을 전한 금메달리스트도 잊을 수 없다.

달 항아리의 성화는 꺼졌지만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가이드러너와 장애인이 보여준 것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 여성과 남성, 청소년과 노인이 서로를 완전히 믿고 동행한다면 살맛나는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에게 보낸 격려와 응원의 소리는 신나는 노랫가락이었고 마주잡은 손은 덩실덩실 춤사위로 이어져 다가오는 봄의 향연을 즐길 수 있으리라 믿는다.

 
경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