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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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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3  05: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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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의 타이름은 고조되어있는 살기의 표면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호남이 휘두르는 몽둥이가 이곳저곳에서 부딪칠 때마다 무언가가 파기되는 소리를 이끌어 낸다. 피하고 공격하는 몸놀림들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유연하다. 말이 그렇지 이건 춤이 아니다. 살상을 부르는 짓이다. 그것도 친 자매들이. 아무리 의도하지 않아도 손에 들린 흉기는 사람을 다치게 한다.

양지는 앞뒤 가릴 겨를도 없이 싸움이 한창인 그들을 분리시키기 위해 두 손을 뻗으며 몸을 밀어 넣어 막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양지가 외친 것은 다만,

“그만해! 에나, 진짜로 다치겠다.”

그 한 마디였다. 지줏대처럼 깊이 박아놓았던 심지가 싹뚝 잘려서 요절나는 듯 한 아픔이 몸의 중심부 어딘가에서 일어났다. 휘청, 하면서 귀남이가 물러서는 것도 보였다. 양지는 일이 나도 큰일이 났구나 싶은 의식은 들었지만 비명도 못 지른 채 앞으로 꺼꾸러졌다. 형제간에 이래서는 안 되는데. 도대체 이유 같은 이유로 이런 일이 일어나기나 한 건가. 양지는 부끄러웠다. 아뜩하게 내려지는 머릿속의 검은 가림막을 안간힘써 밀어 올리면서 호남의 외침을 들었다.

“병원, 병원!”

병원으로 실려 가는 동안 지혈 안 되는 상처에서 느껴지는 흥건한 피의 양으로 양지는 자신이 어쩌면 이 길로 주검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했다.

순간 자신의 일생에 대한 회한이 울컥 일었다. 생을 다 걸어서 추구했던 내 삶의 최고 양지는 어디 있단 말인가. 어머니같은 그런 삶은 정말 살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미안했다. 어머니만큼도 살지 못하고 끝내면서 그토록 오만하게 어머니를 멸시했다니.

남다른 삶을 향한 모색의 나날이었다. 금욕의 시간들이었다. 용감한 우먼파워들의 집단에 참여했던 적도 있지만 여성의 다중성은 여성 스스로도 어쩌지 못할 모순을 갖고 있다. ‘인생은 소소한 즐거움으로 장식된 악몽의 산물’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학자는 학자대로 기술자는 기술자대로 또 장사꾼은 장사꾼대로 농사꾼은 농사꾼대로 제 각각의 일을 하면서 어울려서 살게 되어있는 것이 인생인 것을, 인생이란 도착하는 곳 어디엔가 찬란한 빛을 내며 거창하고 기막힌 그 무엇으로 대기해 있는 것인 줄 알았다. ‘인생, 그거 환각’이라고 어머니의 무덤에서 오열하던 아버지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세상에 새로운 것이란 없다. 변용 변주되는 복제품들의 범람에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존재는 여성들이 배출하는 신인류만이 가능하다’는 어느 학자의 말도 떠올랐다.

양지는 눈을 떠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제 잠에서 깨려는 것일까. 침상을 따라오면서 외치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어느 부위에선가 슴벅슴벅 느껴지던 통증도 견딜만하게 점점 둔해졌다. 까무룩 해지는 혼미가 순간순간 낮은 쪽으로 그녀를 끌어당기는 가운데 깜빡 눈을 뜨면 경계의 금을 넘어 홀연 다른 세상에서 잠을 깨게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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