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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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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7  01: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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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짓 무거운 음성으로 실토를 한 아버지는 서류봉투 안에든 은행 통장과 도장을 꺼내더니 양지 손에다 쥐어주었다. 기막힌 심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던 양지가 상처에서 나오는 통증만도 아닌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버지를 흘겨보며 소리 없이 말했다.

- 아버지-. 어쩌면 그리 기막힌 미끼를 이제야 던져서 저를 낚으려하십니까? 우리 어릴 때 이 돈을 썼어야지 너무 늦지않았어요?

“그러게 이제 와서는 나도 그게 만시지탄이다. 네 에미가 아들 하나는 꼭 낳을 거라 믿었던 고로…….”

스스로 만시지탄이라니 너무 어이없는 나머지 탓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왠지 서글프고 헤식은 장면이었다. 양지는 풀기 없는 의식으로 다음 말을 이었다.

- 넣어두고 아버지나 쓰세요. 연세 든 숫자만큼 한도 많을 테지요. 궁색한 삶에 휩싸인 나머지 제쳐두고 못해 본 것들도 조옴 많겠어요? 한도 많을 거잖아요. 친한 친구 만나면 밥도 한 그릇 하고 쐬주도 한 턱 내시고요.

“야 이것아. 우째 이리 말 한 마디 없노. 애비한테 도끼 눈 치뜨고 따지던 년은 어데 갔노. 어서 일 나서 이 애비 뺨따귀라도 쌔리라.”

소리 없는 대화는 계속되었다.

-이 순간 아버지가 더 원망스럽십니더. 배고파서 헐떡거리다가 굶어죽거나 도둑이나 강도가 된 후인데 돈이 무에 필요합니꺼.

“저저이 네 말이 맞다, 나도 동감한다. 그런 깨달음이 좀 일찍 들었다면 내 인생도 이리 구접시리 늙지는 안했을 걸 싶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후손을 키운다는 네 뜻에 찬동하는 뜻으로 내놓는 기니깨 어서 눈뜨고 이 돈을 쓰란 말이다. 정신 차리 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펄펄 살아가게 제발 퍼뜩 정신 차리고 일어나란 말이다.”

-리더는 구성원들의 감동을 받아야 된다는데 아버지는 암탉이 울면 집구석이 망한다는 말만 고집했지요. 암탉이 많은 집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열심히 부지런히 그 암탉들이 알을 낳게 활력을 불어넣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신문물이 안고 있는 사회적인 혼란 속에서 어찌할 바 모르게 우왕좌왕 한건 우리 가족 모두를 몰락시킨 비극이었지요. 하지만 오빠나 오빠의 도반인 지리산 스님에게서 들은 역행보살의 존재를 듣고는 아버지란 역행보살의 힘을 받아서 저와 우리들의 슬프고 아픈 인연들을 일으켜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나 봅니다. 저 역시 아버지를 증오만 하다 제 인생을 망쳤던 점 뒤늦게야 참회합니다. 언어가 안 되는 게 안타깝네요. 난파 직전의 노후한 폐선의 선장 노릇을 하느라 안간힘 쓴 아버지. 빈약한 자본에 산더미같은 부채는 역부족인 아버지의 인생을 덮친 재앙이었죠? 아버지도 애쓰셨지만 저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생이 더 거칠고 힘든데 우리는 그것의 실체가 우리를 어떻게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채 제가 만든 목표에 끄달려서 무조건 전진했지요. 결국 여기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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