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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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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7  23: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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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버지가 말씀하셨듯이 인생이라는 환각, 환상의 바다를 건너 또 어느 곳 어느 형상의 시절 인연으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지요. 저는 이 무망과 허무를 안고 이제 …….

겉보기는 침착했지만 새삼스런 안타까움에 떨던 양지는 극심한 두통을 쫓아내느라 도리질하듯 강파르게 머리를 내저었다.

“빌어쳐먹을 년. 그 썽달가지는 꼭 안 베리고. 도와준다는데 고맙다고 그냥 받아들이모 안 되나. 저 차중에도 제 맘에 안든다꼬 하는 꼬라지 좀 보래. 야, 이년들아. 네 년들 타고 난 사주팔자가 더럽은기제 내가 그리 살라고 시킸나. 지 성질머리 더럽다는 소리는 안하고 끝까지 잘못을 애비한테만 둘러씌운다. 그래 맨맨한기 에미애비다. 제 자식 몬 되게 하는 부모가 세상천지에 어데 있더노.”

양지는 고통으로 쓰러졌는데 더럽고 못된 성질을 못 이겨 제풀에 기함을 한 것으로 여긴 아버지는 자신의 억울함만 푸념으로 투덜투덜 늘어놓는다. 이때 누군가 들어오는 기척이 나는데 호남이었다.

“아부지 아직도 여 계십니꺼. 죽물이라도 좀 잡솨야지 언니랑 똑같이 아부지도 일 낼낍니꺼?”

“저기 저리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이 늙은 것이 얼매나 더 살자꼬 내 아구지로 음식을 쳐넹길끼고. 이것아 어서 벌떡 일 나서 애비한테 대들고 그래라. 가슴팍을 팍팍 쥐어박고 머리통이 쪼개지게 아픈 소리도 내질러야 될 거 아이가. 잠자다가 깬 듯이 어서 벌떡 일 나란 말이다.”

“의사가 절대 안정이라 캤는데 이라모 안됩니더. 여서 이랄 기 아이라 어서 나가입니시더.”

“내 썽에 겨워서 안할 짓을 했는 갑다. 그년은 또 우짜고 있노?”

“울고 있지요. 정상 참작을 해서 곧 내보내 준다꼬 한 경사님이 그랬십니더.”

“참, 형제간에 이게 뭔 지랄인고. 꼬라지 좋다. 이 년드을-.”

이해 안 되고 용납 못할 분기로 덜덜거리던 아버지가 소리 나게 문을 닫고 나갔다.

아버지가 나간 후에 고종오빠도 왔다.

“오늘도 역시 맑은 정신이 안 돌아오는 가베?”

양지에게로 연결된 여러 개의 생명선이 제 역할을 잘하는지 이리저리 침착한 눈길로 살펴 본 오빠는 양지의 옆으로 다가와 앉으면서 양지의 손을 잡고 어루만졌다.

“이 작은 손으로 큰일을 하겠다고 했지.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야 우리 같이 할 일을 할 거 아닌가. 동생처럼 의식 있고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내 동생이라서 얼마나 든든하고 좋았는지 몰라. 이제야 고백하건대 자네 속에는 얼굴도 모르는 내 어머니도 살아있고 형제도 없이 쓸쓸한 나의 내면을 미소 짓게 해주는 옹골찬 혈육 여동생으로 내 가슴을 뿌듯하게 채워주었네. 동생, 어서 일어나. 우리는 동지 아닌가. 어서 일어나서 내가 개회식 때 연주할 피리소리도 듣고 내가 읽을 찬양문도 손 봐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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