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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포럼]‘배웠다’는 말이 가진 함정
김정섭(부산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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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9  20: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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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말할 때 자신이 잘 아는 낱말을 사용한다. 특히 남을 설득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때는 모르는 단어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단어를 사용하면, 말이 주저되거나 말끝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작가들이나 학자들도 글 쓸 때는 낱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사용한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대화할 때 많은 사람들은 낱말의 의미를 명확히 알지 못하고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우리는 ‘배움’과 ‘학습’ 그리고 ‘공부’를 구분하지 않고 동의어로 사용하는 것 같다. 이것은 필자가 한국에서 ‘학습컨설팅’을 널리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에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많은 교육자들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하는 공부와 학습을 완벽한 동의어로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두 낱말의 차이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낱말의 의미를 면밀히 따져보면, 그 의미가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부와 학습이 어떻게 다른 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공부는 학습보다 그 의미가 좁으며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는 것이다. 공부는 학습의 여러 가지 의미 중 기계적 학습에 해당된다. 이에 일본의 배움의 공동체를 널리 보급한 사토 마나부교수는 공부와 학습을 엄격히 구분하라고 권한다. 시험공부라는 말은 있어도 시험학습이라는 말이 없는 것을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순수한 우리말 ‘배우다’의 사전적 의미는 수동적인 것과 능동적인 것으로 나누어진다. ‘배우다’의 의미가 수동적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가르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으로부터 새로운 지식을 ‘받아 얻다’, 새로운 기술을 ‘받아 익히다’, ‘본받아 따르다’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즉, 외부의 존재로부터 정보나 지식을 받아 들여서 얻고, 익히고, 따르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동적 의미의 배움이다.

‘배우다’의 능동적 의미는 ‘경험하는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능동적 의미에서 배움은 다른 사람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일어나는 자기 주도적 현상이다. 능동적 배움은 감각기관을 이용하여 얻은 정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활용하여 지식을 구성하는 것이다. 자극이나 정보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만,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그 자극이나 정보를 찾아서 체험하여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는 것이 능동적 배움이다.

순수 우리말인 ‘배우다’는 한자어인 ‘학습하다’와 같은 뜻을 지닌다. 그런데 ‘배웠다’와 ‘학습했다’라는 과거형은 그 의미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학습했다’는 표현은 어떤 것을 배워서 익혔기 때문에 그것을 지금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배웠다’는 표현도 배워서 익혔고 그래서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진다. 이러한 경우 배웠다와 학습했다는 같은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배웠다’는 말에는 경험만 했다는 의미를 가질 때도 있다. 우리는 ‘배웠다’라고 말할 때, 단지 어떤 정보에 대해 보았거나 들었기 때문에 그 정보의 존재를 알고 있을 뿐이지 그 정보를 사용할 수 없다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는 과거에 시간관리에 대해 배웠기 때문에 지금 시간관리를 배우려 하지 않는다. 만약 이 아이가 시간관리를 잘 한다면, 그것을 배웠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 아이가 시간관리를 하지 못하면서도 ‘예전에 배웠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만, 과거에 누군가 시간관리에 대해 가르쳐주는 것을 봤다는 뜻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과거에 본적이 있거나 들은 적이 있지만 지금 할 수 없는 것을 ‘배웠다’고 말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따라서 누군가가 ‘배웠다’고 말할 때 보거나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인지 그래서 지금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요구된다. 특히 교사들과 면접관들은 학생이나 응시자가 ‘배웠다’고 말할 때 그러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고 믿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정섭(부산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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