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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 치과를 차려도 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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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0  22: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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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균

화개면 범왕마을 뒷산에 산벚꽃이 피면 지리산의 봄은 비로소 무르익기 시작한다. 지나가다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얼굴에도 꽃향기가 난다. 겨우내 적막했던 칠불사에 사람이 찾아드는 것도 이 무렵부터다. 연둣빛 감도는 산에 버짐처럼 드문드문 피어난 산벚꽃을 보고 오는 길, 그림 한 점이 보고 싶어 ‘흔적 문화 갤러리’에 들렀다. 자연 경관이 빼어나 어디를 보아도 그림이 되는 곳에 살지만, 손으로 그린 그림도 가끔은 보고 싶은 법.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둘러보아도 내가 찾는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엉덩이 반쯤 나온 사내아이가, 몸을 구부려 가랑이 사이로 세상을 보는 담백한 그림이었는데, 얼마 전 팔렸단다. 그동안 몇 번 망설이기만 하다가 값도 물어보지 못했는데 아쉬운 마음이 컸다.

“요즘은 산속에 치과를 차려도 되는 세상 아닙니까?” 서운해 하는 내게 관장님이 말했다. 인구 사천 명 남짓한 면 단위 시골에도, 갤러리를 열면 그림이 팔린다는 이야기였다.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기 위해 귀촌을 한 그분은, 쌍계사 가는 길가에 문화 공간을 마련했고,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을 지리산으로 부르고 있다.

‘산속에 치과를 차려도 되는 세상’. 작년에 그 말을 들었으니 딱 일 년을 내 머릿속에서 맴돈 셈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와 소통하는 ‘스마트한 세상’이 된 게 분명하다. 다르게 말하면, 이젠 비싼 권리금과 월세를 주고 목 좋은 곳에서 장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산속에 치과를 차리면 어떤가. ‘풍경 좋은 곳에서 자연을 감상하며 치료 받는 곳’으로 타깃 고객을 설정하여 시장을 세분한다면 도전해 볼만한 일 아닐까. 가정해 보자. 풍광 좋은 곳에 건물을 짓고 환자 대기실은 카페처럼 꾸민다. 통증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음료를 준비해 놓는다면, 기다리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치료실은 어떤가. 푸른 하늘이 절반 쯤 방으로 들어오게 창을 넓게 내고 ‘자, 입 크게 벌려 보세요. 바람 소리에 귀를 열면 다른 소리 안 들려요’ 농담 건네는 의사의 웃는 얼굴만 봐도 낫지 않을까. 카페처럼 꾸민 환자 대기실은 사랑방이 될 터이고, 거기에서 생산된 이야기는 여러 형태로 전파될 것이다. 이야기의 확산성은 생각보다 크다. 바람 소리 불러들이고 지나가는 구름 붙잡아 말을 거는, 산 속에 차린 치과의 카페 같은 대기실은 ‘이야기를 만드는 공작소’가 되지 않겠는가.

 


공상균(농업인·이야기를 파는 점빵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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