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파고든 육두문자를 탐구 ‘홀리 쉿’
역사 파고든 육두문자를 탐구 ‘홀리 쉿’
  • 연합뉴스
  • 승인 2018.05.1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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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하나님이 아담 갈빗대를 취해 이브를 만들었다고들 한다. 하지만 히브리어 성서는 갈빗대 대신 ‘옆구리’라는 단어를 썼다. 옆구리는 생식기를 에둘러 표현한 말이다. 갈빗대는 음경 뼈를 이른다는 것이 성서학자 지오니 제빗 주장이다.

이는 어느 순간 몸에서 음경 뼈가 사라진 현상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담의 첫 인사,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에 등장한 뼈와 살 또한 음경을 이른 것이 아닐까.

음경 뼈 가설을 천연덕스럽게 소개하는 이는 신간 ‘홀리 쉿’(Holy Shit) 저자 멀리사 모어다. 영문학 연구자인 저자는 영어 문화권을 구석구석 훑으며 이 거친 말들의 연원과 변천, 용례, 문화, 과학까지 캐낸다.

인류 역사는 육두문자 역사이기도 했다.

욕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고대 로마인에게 가장 모욕적인 말은 ‘너는 구강성교를 하는 인간’이라는 말이었다. 아무렇게나 내뱉는 것 같지만, 욕은 두뇌 작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밖에도 수많은 비속어 이야기가 끝없이 펼쳐진다.

최근 국내에도 출간된 책을 읽다 보면, 이러한 거북한 번역을 감당한 이가 누구인지 다시 들춰보게 된다. 역자는 치과의사이면서 번역가로도 활동하는 서정아(41) 씨.

10일 서씨는 조곤조곤한 말투로 “사람들이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읽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상소리를 소개했다고 해서 집어 들기 껄끄러운 책으로 오해하지는 말아줬으면 한다는 청이다.

그는 에세이 ‘들소에게 노래를 불러준 소녀’ 번역 작업을 함께한 글항아리 출판사로부터 지난해 5, 6월쯤 ‘홀리 쉿’ 번역 제의를 받았다. 독특한 소재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일감을 받아들었지만, 너무 다른 결의 책이라 부담이 적지 않았다.

“진료가 끝난 뒤에는 집에 와서 번역에 매달렸고 쉬는 날에도 번역만 했어요. 후반 작업을 제외한 기본적인 번역에 3개월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역자 후기에서 밝힌 것처럼 서씨는 “혼자 있을 때조차 상소리를 입에 올리면 죄책감에 시달리는” 성격이다. 주변에도 육두문자에 밝은 사람이 없었다.

그는 대신 사전과 책, 기사,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열심히 찾아보고 공공장소에서 소리나 낙서로 접한 욕을 기억하는 식으로 대처했다. 본업과 병행하기 벅차지 않았냐는 물음에 “같은 종류 일을 퇴근 후에도 이어서 했다면 힘들었을 텐데, 진료할 때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되니 보완되는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다 보니 길을 걷거나 운전을 하다가도 번역을 해결 못한 상소리가 문득문득 떠올랐다고.

서씨는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으로 “상소리를 보통 천박한 사람들이 하는, 언어 기본과는 동떨어진, 없어져야 할 말 정도로 다들 생각하는데 권력이나 종교 등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는 게 재미있더라”고 설명했다.

이번 책은 ‘맹그로브의 눈물’ ‘마흔아홉, 몽블랑 둘레길을 걷다’ ‘정원에서 철학을 만나다’ ‘들소에게 노래를 불러준 소녀’에 이은 5번째 역서다. 책이 좋아 번역을 공부했다는 그는 연간 1, 2권 책은 내려고 노력 중이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예전처럼 색안경만 끼고 보지는 않고, 상소리에도 뭔가 이유와 역사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바라보게 됐어요. 독자들도 마음을 열고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476쪽. 2만 2000원.

연합뉴스



 
신간 ‘홀리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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