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키워낸 진주 내동면 약수암
'독립' 키워낸 진주 내동면 약수암
  • 김영훈
  • 승인 2018.05.2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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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2대 부사장 지낸 김기태 선생 지원으로 세워져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진주시 내동면 칠봉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암자를 찾았다.

진주 레일바이크 앞 남강변 임도를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비포장 도로와 가파른 언덕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언덕길을 넘으면 산기슭에 ‘약수암’이란 암자를 만날 수 있다. 대웅전을 비롯해 칠성각 등 당우들로 이뤄져 있는데 아담한 절의 모습이 산세와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불자들이 부처님 오신 날 행사 준비를 위해 연등을 달며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주지스님인 진철 스님과 맞닥뜨렸다. 스님은 이 자리에서 약수암에 대한 역사를 알려줬다.

그는 ‘약수암’이 과거 독립운동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절은 1897년 이 곳에 세워졌는데 공식적으로는 1902년 절로 승인이 났다”며 “이후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자 전라도, 경상도 지역 유생들과 스님, 문인들이 이곳에서 독립을 위해 중요사안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절 위치가 산중에 있는 이유도 은밀하게 진행해야 하는 독립운동에 관한 것들이기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특히 진철 스님은 절을 세울 당시 산 주인이었던 김기태 선생의 역할이 컸다고 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 조용히 독립운동을 조력하신 분들도 많았다”며 “김기태 선생이 이에 속한다. 절을 세울 때 선뜻 부지를 내주고 이후 독립운동에도 자금 등을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태 선생은 경술국치 이후 금융계의 임원직을 맡을 정도로 경제적 지위가 상당했던 지방의 재력가였다.

당시 일본인이 만든 ‘증보 진주안내’라는 책자에는 1913년 기준 김기태 선생을 제1위 진주 재산가(재산 100만원)로 평가했다. 또한 김 선생은 김홍조, 강위수, 김병태 등과 일신고등보통학교 설립발기와 기성회 간부 등으로 일신재단 설립을 주도했고 경남일보 2대 부사장을 맡았다.

진철 스님은 “만석꾼이었던 김 선생은 자신의 이익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해왔다”며 “이런 선생의 뜻에 따라 약수암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안을 가질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훈기자 hoon@gnnews.co.kr



 
약수암 대웅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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