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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품에 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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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31  19:3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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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식
오래 전부터 진주 인사동 혹은 서울 인사동 때로는 여행지에서 동서 성현들의 작은 인물상들을 구입해 가깝게 모셔놓았다. 상의 재질은 동이나 철로 된 것이 있는가 하면 나무로 된 것도 있다. 그 중 동으로 된 오래된 공자상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푸른 녹이 슬어 이를 닦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공자상에 칼이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공자가 칼을 차고 있다. 무슨 의미일까? 인문학을 전공하는 몇 분에게 “공자가 칼을 차고 있다는 것을 아느냐?”고 물어도 “모른다. 처음 듣는 소리다”라고 했다. 나 역시 검도와 인연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칼에 대한 나의 관심은 진주시민으로서 주어진 시대정신에서 비롯한다. 교사시절, 창렬사 참배와 충무공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 기념 행군대회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왔으나 왜군에 의해 저질러진 ‘7만 군관민의 참살’은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을 봐도 절체절명의 전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정이 이러니 좀 더 파고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검도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고, 임란 당시 의병장들의 스승이었던 남명의 패검명 ‘내명자경이요 외단자의’라는 명귀에서 수기치인(修己治人)‘ 경의(敬義)의 실천정신’을 새기며 오랫동안 칼에 대한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던 과정에서 공자상의 칼을 발견하고 주위를 환기시키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공자가 찬 칼의 비밀을 캐기위해 나는 중국 여행길에 올랐다. 한국공자연구원 주관으로 서울과 안동의 퇴계연구자 및 퇴계후손, 진암 이병헌 집안의 합천 이씨 문중 등 모두 40여 분과 함께 지난해 4월 초에 공자의 고향인 산동성 곡부를 여행했다. 니구산에서 열리는 ‘춘계대제’ 참석하고 공자 직계 후손을 만나는 것이 주된 일정이었다. 최근 중국은 예수를 내세우는 서구에 대항해 공자를 내세우기로 했다. 곡부 시내를 둘러보니 칼 찬 공자상이 가게마다 가득헀다.

‘칼 찬 공자!’ 공자는 검술과 육예(六藝)의 달인으로서 제후들에게 벼슬로서 충성하기보다는 일상을 넘어 인류애로 향하는 인(仁)으로 돌려 군자의 길을 열었다. 예악(禮樂)을 방편으로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외치고 백성들을 차별 없이 일깨우며 새로운 삶의 길을 열었다. 밤낮 없이 머리로는 자연과 인간을 통찰하여 이론을 세우고, 손발로 땀과 함께 육예를 익혀 웅혼한 기상을 새겨, 왕 앞에서는 당당하게 왕도를 주장했고 백성들에게는 도를 얻는 공부법을 제시했다. ‘칼 찬 공자상’이 준, 이론과 실천의 문제를 고요하고도 깊게 울림을 준 6월이었다.
 

정헌식(한국차문화역사관 백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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