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731산악회 '노을빛 열정'
진주731산악회 '노을빛 열정'
  • 최창민
  • 승인 2018.06.10 09: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주고 졸업 동기 산악회의 등반 사랑
“해는 지지만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 싶다” 20년 전 노(老)정객이 했던 이 말이 생각나는 산악회가 있다. 산을 좋아하는 로맨티시스트들의 모임 ‘진주731산악회’다. 퍼뜩, 악명 높았던 일본군을 떠올리겠지만 실은 진주중 7회, 진주고 31회 졸업 동기산악회를 말한다. 로맨티시스트라고 한 것은 이제는 현실 부정과 삶의 찌듦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들이기 때문.

731산악회(대장 정종섭)는 이들이 현역에서 은퇴할 시점인 2003년 창립했다. 과거 노 정객이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자했던 시절과 비슷한 연배인 77세이다. 전직 교수, 언론인, 교사 등 30여명으로 구성됐다. 고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바람 따라 세월 따라 40년간 헤어졌다가 15년 전 다시 산악회를 결성해 끈끈한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창립 후 지금까지 817차례 산에 올랐다. 한자 큰산 악(岳)자를 써서 ‘악(岳)명 높은 산악회’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지난 주말 731산악회원 20여명이 817번째 산행지로 지리산 천왕봉을 거뜬히 올랐다. 쾌청한 날씨에 사천 와룡산과 진주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특히 까까머리 중·고교시절 자신들을 품어주었던 보금자리 비봉산도 보였다.

지금까지 지리산 종주, 100대명산, 지리산 둘레길· 남해바래길 종주, 2박 3일 산행 14차례, 3박 4일 산행 2차례, 100여명이 참가하는 서울 부산 진주 전국 731동기회 등반대회(11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중국 태산, 노산 등 셀 수없을 만큼 사연 많은 산행을 했다. 평창올림픽 때는 3박4일간 강원도와 대관령 옛길을 걸었다. 여세를 몰아 곧 서해안 장기산행도 계획 중이다. 이들의 목표는 1000회 산행, 주 2회(월·금)씩이면 2020년이면 가능하다. 이를테면 열정과 의욕을 갖게 하는 궁극의 목표인 셈이다.

산악회 이름 731이라는 수에 의미를 둔다. 2014년 7월 31일, 오전 7시 31분에 진주에서 출발해 산청 공개바위 인근의 꽃봉산에 올라 713m가 새겨진 정상석을 세웠다. 이후 매년 7월 31일 산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굳이 이런 행사를 하는 것은 산을 통해 깨닫는 게 많기 때문. 본보 편집국장을 역임한 박영진 회원은 “건강한 삶을 위한 작은 이벤트”라며 “산을 통해 낮은 자세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또 삶의 의욕을 갖는 계기가 된다”고 했다.

이들이 산을 고집하는 첫번째 이유는 건강이다. 세월의 무게는 현실, 박중춘 회원은 산행을 통해 암을 극복했다. 퇴직 후 폐와 뇌에 잇따라 암이 발병해 두 차례나 생사를 넘나드는 큰 수술을 했다. 언감생심, 다시 산에 오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그는 “줄기차게 산에 올라 암을 이겨냈다”고 회상했다. 7년이 넘었으니 완치됐다.

산행 중 단 한건의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2007년부터 산행대장 직을 장기집권(?)하고 있는 정종섭 대장의 공이 컸다. 그는 산행 전 안전사고와 산행지 선정 및 일정 조율, 지역의 인문 지리 문화재까지 모조리 탐독해 유인물을 만들어 나눠준다. 개인적으로는 2005년 킬리만자로를 비롯, 아궁산 북해도 등 해외원정도 다녀왔다. “단순히 산행에만 그치지 않고 산에 얽힌 인문 지리 문화를 알려고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우정이다. 정 대장은 수시로 욕을 먹는다. 사전에 준비하지만 막상 산에 들면 “이길이 아닌가베∼” 라고 할 때가 더러 있다. 이런 날은 욕을 먹기가 일쑤다. “파면시키라”, “땅에 묻어라”는 소리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뒤통수가 간지러워도 어쩌랴, 산에서 내려오면 없던 일이 되고 만다. 이 외에도 등산을 하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했다. ‘만나서 반갑고 함께해서 즐거운 아름다운 노년의 건강산행’이라는 산악회의 슬로건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권영치 회원은 운송대장이다. 전국의 모든 길과 유명 맛집, 저렴한 숙소 등을 꿰뚫고 있는 인간 내비게이션이다. 산행 후 피곤하기도 하련만 승합차를 몰고 서너시간을 달려도 끄떡없는 운전병이다.

그런 그가 이번 천왕봉에 올랐을 때 “예년보다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회원들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또 “언제 지리산에 다시 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자꾸 뒤돌아보게 되더라”고 입을 모았다.

세월의 무게는 자연의 이치, 그래도 1000회 완등을 생각하면 불끈 힘이 솟는다. 팔순을 앞둔 악명 높은 로맨티시스트산악회, 이들은 지금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산악회 산행리본에 새겨져 있는 문구 ‘Forever’(영원히)처럼 산사랑과 우정은 계속될 것이다.

최창민기자

 
지리산 천왕봉에서 기념촬영
산악회이름과 같은 높이의 꽃봉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