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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시론]시골논객 눈에 비친 북미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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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14  0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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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뛰어난 지략가이자 정치가, 협상가인가. 적어도 트럼프가 본 김정은은 그런 것 같다. 첫 만남에 트럼프는 김정은은 영리하고 훌륭해 존경할만한 사람이었다고 평했다.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그런 인상을 받은 것 같다.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그를 믿고 CVID 등 가장 핵심사안은 뒤로 미룬 채 포괄적 합의문에 서명을 하고 그가 곧바로 핵폐기에 돌입할 것으로 믿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번 싱가포르 북미회담은 김정은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 것 같다. 그는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유도했고 체제를 보장받았다. 자연스레 국제사회에 등장해 경제난 극복의 첫 단추를 꿰었고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도 도모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핵문제는 판문점선언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않고 앞으로의 협상을 통해 스텝을 조정할 수 있게 됐고 미국을 상대로 ‘밀당’을 하게 됐다. 반면 미국은 국제사회의 탕아인 북한의 국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함으로서 동등한 국가로 대접, 그들이 저지른 인권탄압과 도발,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 각종범죄에도 불구하고 정상국가로 격을 높여주는 꼴이 되었다. 앞으로 협상을 계속할 뜻을 비춰 줄곧 견지해 온 쾌도난마의 의지를 꺾어 북핵폐기는 긴 호흡의 협상만 남게 됐다. 아마도 트럼프가 재임되고 나서야 북핵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당초 미국은 비핵화에 두 가지 무기로 대응해 왔다. 엄청난 제재, 그리고 경제적 지원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싱가포르회담을 계기로 제제라는 무기는 빛을 잃었고 협상모드로 전환됐다. 회담 직후에 가진 트럼프의 기자회견에서 그런 움직임을 간파할 수 있었다. 서명에 잉크도 마르기 전 트럼프는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언급했고 주한미군철수도 대상에 올렸다. 곧 북·미간 외교관계가 수립되면 북한에 미국대사관이 들어서고 민간차원이라는 명분으로 투자가 몰릴지도 모른다. 남쪽과 등거리외교를 하면서 실리를 취하고 북한 문제를 미국의 이익과 연결해 접근하고 해결의 기준으로 삼을지도 모를 일이다. 트럼프는 기업가이고 장사꾼이기 때문이다. 제재에서 협상으로 전환된 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불가역적인 핵폐기는 불가역적인 협상카드가 된 셈이다.

비핵화는 이제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할 난제가 됐다. 트럼프는 이미 북핵문제와 관련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이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협상의 진전에따라 비용부담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현실로 나타날 공산이 크다. 북한은 핵폐기를 무기로 계속 요구를 할 것이고 미국은 그때마다 주변국의 역할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려되는 것은 이런 상황변화로 인한 국론분열이다. 완전한 핵폐기까지의 긴 호흡을 감당하기에는 북이 우리에게 끼친 피해와 국가적 손실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협상이 진행되고 합의가 도출될 때마다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고 그때마다 갈등의 요소가 등장할 것이 두렵다. 당장 합동군사훈련 중단이 쟁점이 되고 주한미군철수가 도마위에 오를 것이다.

이번 싱가포르회담을 두고 1945년 얄타회담을 떠올리는 것은 비단 필자뿐만 아닐 것이다. 구소련은 간첩과 오열을 동원, 미국의 전략을 사전에 꿰뚫고 있었고 당시 병약한 루즈벨트는 일방적 양보로 한반도의 북쪽을 내줘 오늘의 북한정권을 잉태시켰다. 그 정권은 한국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켰고 끊임없는 도발로 국제사회를 긴장시켰다. 마침내 북한은 그들을 잉태시킨 미국과 마주앉아 핵문제를 논의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만약 그때, 미국이 한반도 북쪽을 양보하지 않았다면… 역사의 아이러니로 치부하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엄중하다. 냉정을 되찾고 긴 호흡으로 우리자신을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시골논객의 눈에 비친 싱가포르회담에 대한 소회의 일단이다.

 
변옥윤(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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