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100대명산
명산플러스 <198> 백이산·숙제봉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6.21  22:10:04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공룡발자국 바위, 발자국은 상부에 찍혀 있어 철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볼수 있다.



백이·숙제는 은나라 제후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이다. 주(周)나라 무왕이 은(殷) 주왕을 공격하려하자 백이·숙제가 무왕을 말렸으나 듣지 않았다. 형제는 이 일로 주나라 곡식 먹기를 거부하고 수양산에 들어 초근목피로 연명하다 결국 굶어 죽었다. 유가에서는 이들을 청절지사(淸節之士)로 받들었다.

1452년 어린 나이에 즉위한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뺏기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 뒤 1455년 사약을 받고 죽었다. 권력이라는 개념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청년은 그 굴레에 갇혀 일생이랄 것도 없는 17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토악질 나는 비정함을 목격한 생육신 조려(趙旅)는 일찌감치 책을 접고 함안 군북에 낙향했다. 그리고 서산 기슭 앞에 흐르는 시냇가에서 낚시로 소일했다. 그래서 아호가 ‘어계(漁溪)’이다. 단종의 비극을 접한 조려는 어느 날 서슬 퍼런 ‘접근 금지’ 어명에도 천리 먼 길 강원도 영월로 말을 몰고 갔다.

고향 함안 군북면에 조려가 말을 다그쳤다는 뜻을 가진 고마암(叩馬巖)이 있다. 일명 고바우라고 불리는 이 고마암은 한자 두드릴 고(叩)를 쓴다. 말에게 채찍질을 하며 청령포로 달려갔다고 알려진 바위다. 훗날 후손들은 조려의 행적을 은나라 백이·숙제와 연결 지어서 그가 살았던 서산을 아예 백이·숙제봉으로 바꿔 불렀다. 함안에 백이산·숙제봉이 있는 이유다.
 

   
▲등산로: 군북역→운동시설→백이산 정상→숙제봉 반환→갈림길→공룡발자국 1·2·3→약수터→서재골 못→서재골 도천재→이순근 독립운동기념비→평광마을→고인돌→군북역사 회귀.


오전 10시, 말끔히 단장한 군북역사는 특이하게도 철도 교량 아래에 짜 맞춘 듯 끼어있다. 역사 오른쪽으로 지나서 철길교량 아래를 통과한 뒤 우회전하면 주차장이 나온다. 등산인들의 주차공간이면서 인근 주민들의 쉼터가 되는 곳이다.

산 쪽으로 난 길을 따르면 이정표와 안내판이 서너 개 서있고 등산화 먼지를 털어낼 수 있는 컴프레셔도 마련돼 있다.

등산로 초입, 완만한 오름길에 싱그러운 솔숲이 이어진다. 200m쯤 올랐을까. 산으로 가는 갈림길과 왼쪽 산 뿌리를 돌아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어디로 향하든 길은 다시 합쳐진다.

조금 더 오르면 나타나는 갈림길 왼쪽은 서촌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30분쯤 올랐을 때 체육시설이 나타난다. 허리돌리기, 턱걸이, 윗몸일으키기 등 다양한 운동기구가 구비돼 있어 군북주민들의 힐링공간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작고 낮은 산임에도 소나무 오리나무 서어나무 등 다양한 수목들이 제 모습으로 성성하게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 솔향기가나는 트레킹길, 주민들의 힐링로드로 손색이 없다.


휴일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면 소재지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좋은데다 큰 힘 들이지 않고 산행을 할 수 있어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곳 임을 알 수 있다.

어느 지점을 지나면 완만하던 오름길이 다소 드세진다. 오전 11시, 산 중턱에다 공원벤치까지 설치해 놓았는데 산이라기보다는 도시의 공원 같은 분위기가 돈다.

백이산 정상까지는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다. 고목 옆을 지나 바위를 돌고 또 돌아 작은 언덕을 넘어서면 정상이다.

넓은 헬기장에는 누군가 쌓은 큰 돌탑을 비롯해 산불감시초소와 CCTV를 설치한 대형철탑이 서 있다.

군북면 소재지에 작은 아파트를 비롯한 주거지, 사방 주변에는 광활한 벼논이 펼쳐져 있다. 평야 가장자리에 여항산, 방어산, 자굴산이 에둘러 있다.

정상에서 숙제봉, 오봉산으로 가려면 직진해서 진행해야 한다. 맞은편에 살짝 보이는 봉우리가 숙제봉이다. 두개의 갈림길이 있는데 어느 곳으로 가더라도 다시 만난다. 안부 갈림길까지 내리막길은 10여분이 걸린다.

   
▲ 나리꽃


오렌지 빛이 선명한 나리가 곳곳에 피어났다. 여름 꽃인 나리는 참나리, 하늘나리, 하늘말나리, 땅나리, 솔나리 등 다양한데 특히 솔나리는 환경부가 지정한 희귀종으로 환상적인 연보라빛 꽃잎을 보여준다. 앙증맞기도 하면서 진귀해 사진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유사종으로 흰솔나리, 거무튀튀한 바탕에 홍자색 꽃이 피는 검은솔나리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 2009년 대구 비슬산에서 이 솔나리를 촬영한 적이 있다.

고도를 낮추면 공룡발자국·평광 이정표와 갈림길이 나온다. 오전 11시 30분, 이정표를 무시하고 진행해 올라가면 숙제봉 고스락이다. 원형의 봉우리 가장자리에 벤치 몇개가 놓여 있고 앙증맞은 정상석이 서 있다.

숙제봉에 올라 드는 생각은 허무하다. 이 산이 왜 백이산·숙제봉이라는 것인지에 대한 연결고리를 조금도 찾을 수 없기 때문. 조려가 함안 땅에 살면서 이 산에 오르기는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숙제봉에서 반환한 뒤 왔던 길을 내려서면 다시 갈림길, 이번엔 안부에서 직진하지 않고 좌측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일정 고도를 낮췄다고 생각할 즈음 운동시설과 샘터가 나온다. 수량이 풍부한 물은 목을 축이고도 가슴까지 적신다.

 

   
공룡발자국 1번


오른쪽 언덕을 약간 올라서 다시 내려가면 이 산의 또 다른 볼거리 공룡발자국 산지(경남도 문화재자료 545호)가 나온다.

경사면에 평평한 바위가 노출돼 있고 그 위에 움푹움푹 파인 공룡발자국이 보인다. 일정한 보행렬이 확인되고 둘레와 깊이가 원형에 가까워 학술적 가치가 높은 화석으로 인정받는다고한다.

공룡발자국은 2004년 10월 20일 백이산 자락의 평광마을에 거주하는 이영부, 마금자 부부가 발견했다. 2009년 3월에는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추가로 같은 시기의 공룡발자국 화석 40여개를 발견해 지금의 명관리 공룡발자국화석산지가 완성됐다.

 

   
고인돌


오후 1시 30분, 하산하면서 화석산지 2·3번을 잇따라 볼수 있다. 3번 화석이 특이한데 산 위에서 굴러 떨어진 별도의 바위 상부에 발자국이 찍혀 있다. 산을 내려와 서재골 이순근 독립운동기념비 지점에선 아스팔트로를 따라 군북역사까지 20여분을 걸어야한다. 도로 옆 벼논 한가운데 선사시대 유물인 고인돌이 있는 것도 신기하다.

불사이군(不事二君) 충절의 주인공이자 생육신 조려 선생의 사연은 군북면 하림리 고암교 부근 백세청풍(百世淸風)바위에서 찾을 수 있다. 군북 소재지에서 1004호 지방도로를 따라 원북리 서산서원 쪽으로 약 2㎞정도 가면 이 암벽이 나온다.

여기서 백세는 100살이 아니라 100세대를 뜻한다. 한 세대 30년, 100세대이니 3000년이다. 청풍의 청은 ‘매섭도록 높고 맑음’을, 풍은 ‘군자의 덕과 절개’다. 결국 백세청풍은 ‘영원토록 변치 않는 매운 선비의 절개’ 혹은 ‘오랜 세월 동안 후세인들의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사람’을 뜻한다.

어계 조려의 변치 않을 절개가 백이·숙제와 다를 바 없고, 훗날 그 이름 함안에서 백세청풍과 백이산·숙제봉으로 승화했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최창민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