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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산소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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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26  18: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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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곤
부모님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살아 생전 그야말로 당신 손발이 닳도록 자식을 위해 헌신하신 분. 그러다 돌아가시고 나면 짠한 그리움의 대상! 그것이 무엇이든 부모님은 자식에겐 언제나 소중하신 분임에 틀림없다.

조선시대 노계 박인로 선생은 조홍시가에서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 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이 없을세 글로 설워하나이다’라는 가사 문학으로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처럼 부모님에 대해선 자식으로서 예나 지금이나 효를 다해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의 실천은 예전만 못한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분명한 것은 부모님의 자식 사랑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없기에 더욱 그렇다.

세간에 부모님에 대한 효를 말할 때 ‘생전 딸이 더 효녀이고 사후엔 아들이 더 효자’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언필칭 유교풍의 가부장적 사회풍조에 기인된다고 볼 수도 있다. 부모 생전 무뚝뚝한 아들 보다 딸의 살가운 정이 더 돋보였을 것이고 사후엔 제사를 모시며 산소를 관리하는 아들의 애틋한 관심이 이유일 것이다. 부모님에 대한 효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가 지켜야 할 미풍양속임엔 틀림없다.

바꾸어 부모님 사후에 산소를 짓는 것도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물론 매장 문화는 좁은 국토 면적 잠식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지만 사실상 규제가 쉽지 않은 우리의 관습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럴진대 이왕지사 산소를 지었다면 당연히 관리도 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괜찮은 의미 하나를 더 보태면 어떨까?

필자의 경우 부모님 산소는 단순한 관리 차원을 넘어 성찰에 교육적 의미를 더하고 있다. 가령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기면 먼저 산소를 찾아 조상님의 은덕임을 고하고 감사의 예를 올린다. 반면 잘 풀리지 않는 일은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점을 산소 앞에서 성찰한다. 필요시 아내와 자식을 대동하고 머리 숙여 ‘가족 모두 열심히 하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간접화법으로 위무한다. 그러면서 나름 함께 간 아내와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 그들 대신 말을 올린다.

물론 가족의 노력을 필자도 잘 알고 있다는 의도된 선전이기도 하다. 이런 행위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아내나 아들이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도 깊은 속내는 있구나’ 라고 느꼈으리라 짐작된다. 가정 평화의 시발도 마음 씀씀이의 효에서 비롯됨을 잊지 말자.
 
김영곤(시인, 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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