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 이호걸박사 신간 '눈물과 정치'
인문학자 이호걸박사 신간 '눈물과 정치'
  • 연합뉴스
  • 승인 2018.07.22 15: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인의 눈물로 보는 시대 코드
춘원 이광수(1892∼1950)가 1917년 신문에 연재한 장편소설 ‘무정’(無情)의 결말에는 “영채도 선형의 손을 마주쥐며 더욱 눈물이 쏟아진다. 형식도 울었다. 병욱도 울었다. 마침내 모두 울었다”는 내용이 있다.

수십 년이 흐른 1960년대에 유행한 노래 ‘동백아가씨’는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라는 절절한 가사가 특징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인은 20세기에 참 많이 울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가난,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무시로 흐느꼈고, 많은 사람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와 노래를 감상했다.

영화, 신파, 눈물을 주제로 연구 활동을 해온 인문학자 이호걸 박사는 신간 ‘눈물과 정치’에서 눈물을 중심으로 한국 문화와 정치, 이데올로기를 탐구한다.

이 땅에서 살아간 사람들은 본래 눈물이 많았을까. 저자는 눈물이 인간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인 슬픔의 산물이고, 시공간을 넘어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고 설명하면서 전근대와 근대의 눈물을 비교한다.

그는 “조선사회는 눈물을 절제하는 경향이 있어서 눈물은 주로 여성의 것이었다”며 “조선시대에는 눈물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편이었고, 가족적 눈물이 그리 강하게 흐르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사실은 ‘가족’이다. 20세기 한국인은 가족 생각만 하면 주르르 눈물을 흘리는 습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이나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보며 떨어뜨리는 눈물이 단적인 예다.

저자는 한국 근대 특유의 가족적 눈물을 ‘신파’(新派)로 명명한다. 그는 “한국인은 가족 구성원 간에 매우 밀착한 관계를 유지해온 경향이 있었는데, 여러 조건이 겹치면서 가족에 과부하가 걸렸다”며 “한국인이 진입한 근대적 생존경쟁의 장에서 투쟁 단위는 가족이었고, 가족주의는 지상 윤리가 됐다”고 분석한다.

20세기 한국인의 눈물에 새겨진 코드 중 하나가 가족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정치였다. 저자는 식민지배를 당한 경험으로 인해 민족주의와 눈물이 연계됐고, 그 결과 해방의 순간에 사람들이 눈물을 쏟아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민족주의에 이어 파시즘, 사회주의, 자유주의와 눈물의 관계를 고찰한다. 박정희 정권은 억압적인 폭력정치를 시행하는 한편으로 고통과 눈물을 동원했고, 이에 반발해 생겨난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에도 눈물이 스몄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지금은 20세기가 아닌 21세기다. 신파적 눈물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감정보다는 이성이 중시되는 세상이다. 신파와 낭만적 요소를 제거한 이른바 장르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진다.

저자는 “오랫동안 눈물에 치우쳤으니 한국인은 조금 더 이성적일 필요가 있다”며 “눈물보다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삶의 향유를 포기하지 않게 하는 웃음이 요구된다”고 제언한다.

따비. 408쪽. 2만 2000원.

연합뉴스



 
신간 ‘눈물과 정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