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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길의 경제이야기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빠리의 꺄페 르 프로꼬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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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07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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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Procope_4
꺄페 르 프로꼬쁘


프랑스에는 다양한 형태의 음식점 유형들이 존재한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꺄페(cafe)이다. 한국에서 잘못 이해되고 또 변형되어 야간에 술을 파는 장소로 잘못 쓰이고 있지만, 꺄페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는 그야말로 커피이다. 커피를 우리는 영어식으로 쓰고 있지만, 이탈리아어로는 카페(Caffe), 독일어로도 발음은 카페(Kaffee),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도 까페(Cafe)다. 어쨌거나 서양언어의 커피를 지칭하는 단어들은 아랍어 카흐와에서 왔다. 프랑스에서 보게 되는 꺄페는 원래 기능이 커피를 팔고 마시는 공간임에 틀림이 없다. 말하자면 한국에서 흔히 보게 되는 커피숍이다. 그래서 빠리의 5대 유명 꺄페라면, 르 프로꼬쁘(Le Procope), 르 꺄페 드 라 빼(Le Cafe de la Paix), 르 꺄페 드 플로르(Le Cafe de Flore), 라 끌로즈리 데 릴라(La Closerie des Lilas), 레 둬 마고(Les Deux Magots)이다. 이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문을 연 꺄페가 르 프로꼬쁘이다.

그러다가 시대가 바뀌고 사회구조가 변화하면서 꺄페의 기능이 식음료들을 함께 파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프랑스에서 최고급 레스또랑의 반열에 드는 식당들 가운데 꺄페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 대표적인 곳이 빠리 6구에 자리 잡고 있는 꺄페 르 프로꼬쁘(Le Procope - 13 rue de l‘Ancienne Comedie, 75006 Paris)이다. 이 꺄페는 1686년에 프랑스에 와서 횡재를 꿈꿨던 한 이탈리아 사람이 문을 연 것이다. 그는 시칠리아 섬의 팔레르모에서 온 프란체스코 프로코피오 데이 콜텔리로 당시 이런 유의 가게는 독특하고 유일무이한 형태였다.

이 검은 색깔의 음료이자 새로운 아로마향의 커피는 1660년대부터 마르세이여 항에 정박하는 선박들에 의해 수입되기 시작하여 이미 프랑스에서는 알려져 있기는 하였다. 1669년 오스만 터키의 대사가 베르사이여 궁을 방문했을 때에, 그걸 기념하여 마침내 귀족적이고 부르쥬와적인 살롱들에서 그 커피를 내놓게 된다. 그 후 사람들이 캬바레와 포도주를 마시는 도박장에서도 적잖게 마시기 시작하였다. 이 프로꼬프 꺄페는 문화예술인들과 정계 인사들이 드나들며 교제를 하던 장소의 선조 격이다. 빠리에서 잘 알려진 명소들 가운데 하나로, 역사책에서 거명되기도 하지만 소설 속에도 등장한다. 이 프로꼬쁘가 명소가 되게 된 계기는 줘 드 뽐므(Jeu de Paume)에 있다가 쫓겨난 라 꼬메디-프랑세즈(la Comedie-Francaise-1680년에 창단된 프랑스 연극 협회)가 이 꺄페가 문을 연지 3년 후에 건너편 건물(14번지)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부터다.
   
 

프로꼬쁘는 넓은 내부 홀에다 내부 장식을 멋지게 꾸몄는데, 바닥은 흑백 타일을 깔고 벽에는 태피스트리와 거울들을 걸었으며 천정에는 화려한 수정 샹들리에가 휘황한 빛을 발하는 로맨틱한 분위기였다. 이러한 형태의 내부 장식이나 분위기는 하나의 유행이 되어 빠르게 소문이 나기 시작한다. 그러자 라 퐁텐느(La Fontaine), 라신(Racine), 레냐르(Regnard)와 같은 문인들이 드나들기 시작하고, 그 뒤를 이어 디드로(Diderot), 삐롱(Piron), 루소(Rousseau)가 단골이 되었다. 그리고 1784년 4월 27일에는 보마르셰(Beaumarchais)가 근처에 있는 오데옹 극장에서 선보인 작품 ‘피가로의 결혼’의 초연을 기념하는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그의 전용 테이블을 갖고 있었던 볼떼르는 이미 1718년에 그의 작품 ‘외디푸스’의 초연을 마치고 파티를 연 바 있었다. 그 이후로 위고, 베를렌, 쇼팽, 조르쥬 상드, 떼오필 고띠에, 정치인 ㅤㄱㅑㅁ베따(Gambetta), 당똥(Danton), 로베스삐에르(Robespierre) 등이 드나들었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했던 곳이기도 하다. 빼놓을 수 없는 점은, 프로꼬쁘는 프랑스 대혁명의 요충지 가운데 한 곳이었다는 사실이다. 1792년, 혁명지도자들이 이곳에서 민중 혁명군들에게 뛸러리(Tuileries)를 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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